'편두통은 질환,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김병건 대한두통학회장·미치코스타스 그리스두통학회장 대담
2019.04.01 11:12 댓글쓰기


편두통은 흔하며 매우 고통이 큰 질환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환자들은 매우 적다. 대한두통학회에 따르면 국내 편두통 유병률은 6.1%로 보고됐고 성인 편두통 환자는 최소 260만명(전체 4천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실제 편두통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는 53만5000여명에 불과해 약 20%만 전문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만성편두통의 급성기 치료 못지않게 편두통 발생 일수를 줄일 수 있는 예방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다양한 치료 옵션들이 제시되고 있다. 두통 전문가인 김병건 대한두통학회장(을지병원 신경과)과 미치코스타스(Mitsikostas) 그리스두통학회장(아테네대학교 신경학부)의 대담을 통해 한-유럽의 만성편두통 현황을 살펴봤다. 더불어 현재 가장 권고되는 만성편두통 예방 치료제, 올해 새롭게 등장하는 신규 치료제에 대한 소개와 함께 고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들어봤다.[편집자주]


Q. 편두통 유병률과 진단, 치료에 있어 한국과 유럽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역간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김병건 : 과거에는 편두통 유병률이 아시아는 낮고, 유럽은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 최근 역학조사를 보면 아시아와 유럽 모두 20% 정도의 비슷한 유병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의 유병률 증가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으나 종전보다 편두통 진단율이 높아진 점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 판단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주요 국가들에서 두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더불어 두통학회가 발족한 후 두통분야 전문의들이 배출된 데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편두통은 두통과 다른 양상을 보이나 전문적인 교육과정과 임상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갖춰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미치코스타스 : 유럽의 편두통 유병률은 집계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0~20%다. 그 중에서도 편두통 발작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심한 편두통의 경우, 즉 만성편두통(chronic migraine) 환자는 일반 인구의 10% 정도다. 만성편두통은 단순히 통증이 있는 것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되며, 환자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한 질환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유럽은 편두통 질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학회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편두통을 알림과 동시에, 환자 단체와 함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당사자들은 의학적인 데이터나 전문가들 요구보다 환자들 목소리에 가장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두통학회에서는 유럽 내 두통 및 편두통 연맹 등 환자단체와 공동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일례로 유럽 의회에서 두통과 편두통 현황과 치료지원 문제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편두통 인식의 날을 제정하는 활동을 했다. 좀 더 많은 정치인 등의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편두통이나 원발성 두통이 환자들의 삶에 큰 영향 미친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사실 한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에도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고 왔다.


Q. 한국은 편두통을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일상적인 증상으로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조기진단 필요성은

김병건
: 편두통 인식에 대해서는 동서양 간 차이가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통증이 생기면 잠깐 나타나는 증상 정도로 생각하고 질환으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참는 것을 미덕이라 생각하는 문화적 특성 때문에 아파서 병원에 가서도 환자 스스로 통증에 대해 적극적인 호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진단이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두통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늦게 시작된 편으로 유럽두통학회는 1990년대 초반 결성된 반면, 대한두통학회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0년경으로 시기적인 차이가 있다. 또 이러한 편두통에 대한 낮은 인식을 높이고 환자들을 위한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질환을 경험한 환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한데, 환우회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는 유럽과 달리 국내 환자들은 이런 활동에 익숙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
한 가지 고려돼야 할 부분은 우리나라 편두통 환자의 통증강도가 유럽환자들에 비해 약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미치코스타스 교수님은 유럽에서 치료가 필요한 편두통의 유병률이 10% 정도 된다고 했는데, 한국의 경우 질환에 해당하는 심각한 편두통 유병률은 6% 정도로 보고 있다. 두통 중에서도 통증 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진 군발 두통을 예로 들면, 환자들이 비교적 젊고 질환의 심각성이 커 환우회 활동도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군발 두통은 그리스와 같은 유럽에선 매우 흔하지만 한국에선 희귀한 질환이다. 이처럼 통증 강도나 두통 간 유병률의 차이가 한국에서 편두통 인식률이 낮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추측한다.


Q. 유럽에서는 보톡스가 편두통 치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편두통 치료에 있어 보톡스가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인가? 치료 가이드라인은


미치코스타스 : 보톡스에 정부차원의 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이 경우 정부 정책상 재정적인 상황을 고려해 효과와 치료 비용을 고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때문에 경구약물 사용 후 2차로 보톡스를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private clinic에서는 보톡스를 1차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할 만큼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치료제다. 1·2차 치료제 기준은 보험 급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공적 보험의 수혜자가 아니라 민영보험을 들었을 경우, 1차 치료제로 보톡스를 처방한다. 보톡스는 최고의 과학적 근거를 가진 제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가 공적 보험을 들어 정부 공단의 지침을 따라야 할 경우, 보톡스는 2차 또는 3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즉 보톡스를 처방하기에 앞서 토피라메이트를 포함한 최소 2개의 제제를 처방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토피라메이트는 만성 편두통의 예방 치료에 있어서는 과학적으로 효능이 입증돼 있지 않다. 이런 사안은 의약계가 가지고 있는 오랜 문제들의 연장선상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층화된 단계별 접근법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 맞춤식 치료다. 단계별 접근법은 접근성을 고려해 시중에 나와 있는 치료제들을 가격이 저렴한 약부터 순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맞춤식 치료의 경우에는 환자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처음부터 제안한다. 이런 경우, 처음부터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제를 제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료에 들어가는 시간과 그 효과가 우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당국에서는 당연히 단계별 접근법을 더 선호한다. 총 비용 면에서는 차이가 없을 지 모르나 약제로 인해 발생하는 직접적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두통학회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데 있어서 만성 편두통에서의 보톡스 치료를 2차 치료제로 제안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접근성의 문제   때문이다. 과학적인 임상결과에 근거한 치료 지침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김병건 : 단계별 접근법을 적용할 때 비용이 절약되는 것은 맞지만, 삶의 질이나 일상생활이 어려워 생기는 경제적 손실을 따지면 환자에게 맞는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인정된다. 앞으로는 환자 맞춤식으로 치료 방향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Q. 토피라메이트와의 비교 임상에서 보톡스가 효능과 안전성에 있어 우월함을 입증 받았다. 이에 대한 두 분의 견해는 


미치코스타스 : 물론 두 제제 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토피라메이트와 보톡스를 오픈라벨 임상으로 비교했을 때 보톡스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경우 1차 종료시점, 2차 종료시점에서의 증상 개선효과 및 이상 반응 발생률 측면에서 토피라메이트 치료 환자들에 비해 우월한 결과를 보였다.


김병건 : 데이터를 보면 50% 이상 두통률 감소 환자가 토피라메이트의 경우에는 12%, 보톡스는 40%로 나타나 세 배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상 반응 수치도 보톡스는 47.7%인 반면 토피라메이트는 80% 정도다. 토피라메이트에 비해 보톡스가 효과도 좋고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치다. 즉, 부작용으로 인해 중단률이 높은 토피라메이트를 사용한 후 실패한 경우 보톡스를 적용하기 보다는 경구약물 이전에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보톡스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치료임을 증명한 연구라 할 수 있다.


Q. 보톡스를 사용한 국내의 두통 치료 현황이 궁금하다. 허가는 오래 전에 받았지만 급여권에 진입하지 못한 점이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지


김병건 : 보톡스는 5~6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치료제로 사용 중이다. 점점 환자나 의사들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어 보톡스를 경험하는 환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환자들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급여에 포함되어야 하는 중요한 치료이나 앞서 언급한 단계별 접근식의 보험 급여에 대한 개선과 치료를 위해 소요되는 시간, 노력, 전문성 등을 고려한 수가에 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는 허가된 적응증에 대해 사보험(실손보험)이 적용돼 과거에 비해 환자들이 적은 부담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 보험 문제의 경우에는 치료 수가 책정 등 이슈가 있어 좀 더 논의가 필요할 듯 하다. 또 최근에는 사보험을 통한 보장을 받는 경우가 많아 과거에 비해 환자들의 급여에 대한 요구가 줄어든 경향이 있다.
 

Q. 신약인 CGRP 항체 약물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이다. 임상 적용에 있어 우려나 문제점은 없는지


김병건 : 현재 임상에 처방된 케이스 상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나, 만성편두통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기 때문에 장기 치료에 있어서 부작용이 나타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약은 맞지만 장기간 사용해도 안전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 그리스에서는 CGRP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미치코스타스 : 유럽에서는 이 제제가 이미 나와 사용 중이다. 보톡스와 같이 급여가 되고 있는 상황이나 현재로서는 3차 치료제에 포함되어 있다. 즉, 만성편두통 증상에 토피라메이트와 보톡스를 처방한 이후에도 재발하는 경우에 한해 CGRP 제제를 사용한다. 세 개 제제가 모두 나와 있는데 가장 먼저 시장에 선을 보였던 Aimovig(erenumab)이 처방케이스가 가장 많고, 그 다음 galcanezumab이나 fremanezumab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사용되고 있다.


Q. 환자 또는 국내 의료진들을 위해 조언이나 당부의 말이 있다면


김병건 : 편두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기 때문에 발병 후에는 전문적인 치료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 적합치 않은 치료에 많은 비용을 써서 경제적 부담이 되고, 통증이 너무 심해서 삶의 질이 하락하는데, 두통에 좋은 치료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는 환자들이 많다. 현재 보톡스와 같은 효과적인 치료제들이 개발돼 있기 때문에 병원에 와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것을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미치코스타스 :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점은 편두통은 단순한 통증이 아닌, 뇌의 실질적 변화를 유발하는 질환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편두통이 과소평가 된 경향이 있다. 정부나 미디어뿐 아니라, 의사나 환자들도 편두통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간과하곤 한다. 김교수님 말씀대로 편두통이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며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 수 있음을 환자들에게 알려줘야 하고, 병원에 방문해 진단을 받고 치료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강조해야 한다. 신경과 전문의들에게는 환자에게 적극적인 편두통 치료를 권장할 것을, 정부에는 편두통이 특히 50세 미만 인구에게 가장 빈도가 높고 환자들의 삶에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질환으로 환자들을 위한 치료 지원이 필요함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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