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전공의가 후배에게 폭력을 휘둘러 비장이 파열된 사건이 발생하자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가 전공의들의 구조적 폭력 노출에 대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최근 서울 소재 대학병원 정형외과 4년차 전공의는 당직실에서 1년차 전공의에게 환자 진료에 관한 질책을 하며 배를 여러 차례 걷어찼다.
피해 전공의가 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은 결과 비장막이 찢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진상조사에 나선 병원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파면 등 가해 전공의에 대한 처벌 절차에 들어갔지만 피해 전공의는 "자신이 일을 잘 하지 못해 선배에게 맞았다"고 경위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 같은 전공의 선·후배 간 폭력 사태는 의료계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선배 전공의의 폭언과 폭력이 일상화 됐다는 점과 후배에게 벌점으로 의국비 300만원을 내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폭로가 의사커뮤니티에 게재돼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같은 전공의 폭언·폭력 등 강압적 분위기에 대해 대전협은 “구조적 폭력이 물리적 폭력을 부른다”며 “가해 전공의 개인의 책임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들은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 강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공의들의 설명이다.
실제 최근 대전협과 의료정책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에서는 주당 100시간 넘는 근무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형외과는 1년차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134시간, 1~4년차 전체 평균은 112시간으로 나타났다.[아래 표]
서울 소재 수련병원의 한 전공의는 “수술방에서 후배 전공의들이 졸면 발로 한 번 가볍게 차서 깨우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데도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린다거나 졸음 때문에 의료 사고에 근접한 실수를 하게 되면 점점 더 심하게 때리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폭행한 전공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막상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 피로로 찌든 전공의들에게 수술을 받는다면 때려서라도 깨우고 싶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대전협은 “근무 시간 동안 전공의들이 잠깐이라도 딴 짓을 하면 수술 업무 등에 차질을 빚게 되므로 고년차 전공의들은 저년차의 업무 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한다”며 “전공의들 중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병원 업무가 마비되므로 의국 내의 분위기는 거의 전시 상황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 대전협이 실시한 ‘전공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수련과정 중 언어폭력을 당하는 경우는 65.8%, 신체적 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22%로 집계됐다.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언론에 노출된 가해자 개인만 처벌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며, 물리적 폭력을 유발하는 구조적 폭력을 해결해야 한다”며 “환자의 안전과 전공의의 인권, 그리고 올바른 의료 환경 수립을 위해서는 전공의들의 근무수련환경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