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초고령사회 진입, 국민들의 의료 지식 수준 증대 등으로 현재 의료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올 한해 의료계 양대 종주 단체인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와 대한병원협회(회장 박상근)는 어떤 활동을 전개해왔을까.
그동안 의협과 병협은 의료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을 목표로 회무를 운영해왔다. 주요 현안의 경중 여부를 떠나 의료의 본질인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를 최일선 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양 단체는 동반자 관계를 표방하면서도, 소속 회원을 우선순위로 염두에 둔 행보를 보여 왔다. 2015년 의료계 핫 이슈였던 ‘메르스 사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여부’, ‘전공의특별법’ 등에 대한 활동이 단적인 예이다.
의·병협 “메르스 종식 ‘우리’가 이끈다”
의료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저수가 문제 해결’에 대한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올해 상반기 갑자기 터진 메르스 사태는 병원 규모를 막론하고, 의료계 경영난을 더욱 가중시킨 중대 사안이었다.
사실 메르스는 ‘개원가’보다 ‘대형병원’에서 무서운 기세를 떨쳤다. 삼성서울병원, 강동경희대병원 등이 폐쇄되면서 공포감은 극대화됐다. 정부 측의 갈팡질팡 대응과 환자 유입경로 미공개로 혼란은 가중됐다.
이에 따라 의협과 병협은 정부 측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사태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 지난 7월 메르스 관련 범정부 차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국민들의 불안감 해소에 앞장섰다.
양 단체는 “메르스 집중발생과 사망자 증가로 인한 불안과 공포는 국민 여러분과 의료계, 정부 모두의 합심으로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며 “특히 메르스 사태를 감내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발표했다. 사태 수습의 공을 오히려 국민들에게 돌린 것이다.
이와 더불어 양 단체는 “정부는 메르스 종식이 최종 선언될 때까지 모든 가용 인력과 예산을 집중 투입해 메르스 확산 저지와 신종 감염병 예방활동을 위해 총력을 경주, 국가적·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대책으로 ▲독립성을 가진 보건부 독립 개편 ▲요양기관 및 보건의료인에 대한 피해 보상 방안 관련 ‘메르스 특별법’ 제정 ▲메르스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가칭)‘범정부 민관협의체’ 출범 등을 촉구했다.
양 단체는 “국가적 재난위기 상황에서 보건과 복지 분야가 공존하는 정부 조직 체계로 인해 신종 감염병 확산 조기 대응이 미흡했다”며 “국가경제 회복과 국민들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진료환경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언급했다.
메르스 사태 직후 연일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현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음과 동시에 국민들의 적정 진료권 확보를 강조한 것이다. 특히 메르스가 발병한 의료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그 결과, 인터넷 상에서는 이례적으로 의료계의 헌신적인 모습을 찬사하는 호의적 여론이 형성됐다. 과잉진료, 성추행 사건 등으로 일부 의료진의 그릇된 행동으로 실추된 의료계 이미지가 일순간 회복됐다.
회원들의 피해보상을 위한 정부 당국과 끊임없는 협상도 이어나갔다. 국회로부터 2500억원 피해보상액을 이끌어냈다. 1차 보상(1000억원)은 133개 기관, 2차 보상(1500억원)은 이보다 48곳이 늘어난 181곳이 선정됐다.
이처럼 사망자 38명(치사율 20.4%)이 발생한 이번 안타까운 메르스 사태에 있어 의협과 병협은 긴밀한 공조 체제를 유지했다.
“의료질서 붕괴시키는 규제 기요틴정책 전면 반대”
의협과 병협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 기요틴 정책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냈다.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과 같은 전문성이 답보되지 않은 의료 정책이 함부로 도입돼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양 단체는 지난 1월 제3차 의·병협 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지난 2014년 정부가 발표한 보건의료 규제 기요틴 정책 관련, 직역 간 갈등을 조장하는 잘못된 정책에 적극 대처하기로 합의했다. 핵심은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이었다.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국민 건강을 볼모로 직역 간 갈등을 조장하는 규제 기요틴 정책에 의협과 병협이 함께 대응함으로써 보다 강력한 동력을 얻게 됐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병협 이계융 상근부회장 역시 “양 단체 간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국민 건강’이라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공조를 해야 할 부분”이라며 “한의계에 대한 의협 대응에 발맞춰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허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의협과 병협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경사법 제정’에 있어서도 동일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4월 입법·발의돼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해당 법안은 안경사 업무범위가 명확히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입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양 단체는 “법안에 포함된 ‘타각적 굴절검사’는 오차 없이 눈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는 것으로써 안과학적 전문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의료행위”라며 “자칫 국민의 눈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법안이 제정돼서는 안 된다”고 성토했다.
이어 “실제 눈 질환, 특히 초기의 눈 질환은 안과전문의에 의한 타각적 굴절검사를 포함해 산동검사, 안과검사장비를 이용한 검사, 전신검사 등을 시행하는 것이 필수”라며 “안경사가 타각적 굴절검사를 시행한다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와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다.
아직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안경사법은 국회 통과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향후에도 의협과 병협이 공동으로 맞대응에 나서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의협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vs 병협 “先 정부 재정지원”
단, 의협과 병협은 지난 12월 극적으로 통과된 ‘전공의특별법’만큼은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병협은 전공의특별법을 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에게 재검토를 요구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복지부, 의협, 의학회, 전공의협의회, 병협 등 관계기관이 합의한 수련환경 개선 관련 8가지 항목이 시행 중이기 때문에 현행 기준 강화 외 별도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강력히 전파했다.
더욱이 정부 재정지원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련환경 개선만을 추진할 경우 실제 의료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병협 측 주장이다.
병협 박상근 회장은 “전공의특별법을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오히려 수련환경 개선을 저해하고 의료공백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며 “전공의 업무 대체 인력으로 3600여명이 필요하고, 약 3500억원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피교육생인 전공의를 근로자 지위로만 판단한다면 제자가 스승을 고발해 범법자로 만들게 되는 악법의 소지가 있다”며 “이와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의료계 자율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의협은 해묵은 의료계 내부 과제로 남았던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 개선이 이번 법안 통과를 계기로 단번에 이끌어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당 100시간 이상의 과도한 근무량 ▲응급실 등 야간 취약시간대에 집중된 혹독한 근무여건 ▲언어 및 신체적 폭행 등에 노출된 전공의 처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전공의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고 수련 및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환자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우수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정원정책, 수련환경, 학습권 등의 전공의 처우 및 수련환경 개선에 대해 국가 책무 이행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 송명제 회장은 “수련 문제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이기 때문에 전공의특별법이 무리 없이 통과됐다”며 “전공의특별법 발의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을 해 준 의협에 감사 드리고, 병협도 전공의 처우 개선에 보다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