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등 외부 침범 경계선에 서 있는 의사들
환자 생명사수 공간 응급실 침해 다반사···위기감·낭패감 팽배
2016.07.09 07:55 댓글쓰기

[기획 1]견고했던 의사, 병원 고유의 영역이 무너지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습격’은 일상화된 지 오래고 내부자들 간 ‘뺏고 빼앗기기’ 경쟁도 치열하다. 의료계에 불어닥친 진료영역 파괴 바람에 각 진료과별 담장은 허물어지다 못해 흔적만 겨우 확인될 정도다. 최소한의 물가 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저수가 상황을 이기지 못해 폐업하거나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은 채 비급여 진료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개원의들도 늘고 있다. 이제는 나아가 의사의 영역을 넘보는 첨단 ICT 기계들의 등장도 줄을 잇고 있다. 구분이 어려운 경계의 선에 서 있는 그들. 과연 침범인가, 소통인가. [편집자주]


“야, 이 새끼야. 우리 애가 지금 아파서 울잖아.”

“이봐, 남자 선생. 우리보다 더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라니, 말이 돼? 아이, × ×.”

 

환자들의 생명을 지켜야할 응급실에 오늘도 침입자가 나타났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가면’을 쓴 이들은 신성한 진료 공간을 침범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는 사이 병상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생명은 무차별적으로 위협받는다.

더 중요한 것은 폭행에 대비하지 못한 의사들의 진료권, 나아가 생명 역시 존중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레지던트 “오늘도 경찰서 다녀와”

“오늘도 저희 레지던트 한 명이 환자 보호자가 휘두른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해 늘 업무 강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오전 내내 경찰서에 다녀와야 했던 겁니다. 이를 바라봐야하는 저로서는 그저 씁쓸할 뿐입니다.”

한 소아환자가 갑작스런 경련에 부모와 함께 동네병원에 들렀다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를 찾았다.

그런데 대기 시간이 다소 길어지면서 언짢은 심기를 내비치던 부모.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소아 환자의 눈에 난 상처를 발견한 부모는 다짜고짜 레지던트에게 폭언을 퍼붓더니 심지어 폭행까지 했다.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한 교수를 만났다. 그는 제자가 언제, 어디서 이런 일이 벌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014년 대한응급의학회가 실시한 전문의 총 조사와 응급의학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만족도가 형편없이 낮게 집계됐다.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응급실에서 겪게 되는 온갖 폭언과 협박, 그리고 폭행이었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미국의 경우 한 병원당 스탭은 20명~30명, 레지던트는 연차당 5명씩, 총 20명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고작해야 스탭은 3명~4명, 임상강사 1~2명, 레지던트 총 5~7명 정도로 인력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비교했다.

설상가상으로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데다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몰라 의료진들은 항상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심각한 문제는 현장에서 원활한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악순환으로 되풀이된다.

국내 굴지의 대학병원으로 꼽히는 서울대병원도 의료진이 당하는 폭행이 예외일 수 없는 모양이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K교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의사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그럼에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등은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환자와 보호자의 의료진 폭행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방어할 법적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은 더욱 고개를 떨구게 한다.

K교수는 “난동을 피우는 사람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여서 제지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응급실에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전공의 “폭언 66%·폭행 22% 경험” 구태 여전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014년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수련 중 폭언, 폭력 금지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공의 수련 중 폭언 및 폭행을 경험하는 일이 여전히 다반사여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참여한 이번 조사에 따르면 폭언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65.8%, 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22.0%에 달했다.

연구소는 “전공의들이 교수를 비롯한 상급 전공의, 동료 등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각 수련병원 규칙에 ‘폭력 및 성희롱 예방 및 금지’에 대한 사항을 명확히 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주당 평균 88.2시간 근무하고 있었으며 8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2.2%로 조사됐다.

눈에 띄는 대목은 외과계열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100시간으로 가장 높았으며 수련 연차가 낮은 경우, 업무량이 집중돼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인턴의 경우 100시간 근무하는 비율이 56.4%, 당직근무 평균 횟수가 주당 5.1회로서 사실상 휴일(off)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12조(응급의료 등의 방해금지)에 따르면 「누구든지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이송·응급처치 또는 진료를 방해하거나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기재·의약품 기타의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하여서는 아니된다. 제60조(벌칙) ①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응급실 폭력에 대한 많은 보고와 사례가 알려지고 있음에도 법이 적용돼 처벌한 경우가 없다는 데 대해 울분을 토하고 있다.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J교수는 “진료방해 행위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하는 선례를 보지 못했다”면서 “항상 의료진이 참고 넘어가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병원 측도 폭력을 행사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해야 되는 게 원칙인데 상당 수 병원들이 괜한 소송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는데다 병원 이미지 차원에서도 유야무야 처리하고 만다는 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피해자 진압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사태를 지켜보다 단순 폭행으로 처리하거나 피해자를 풀어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전언이다.

그는 “환자나 보호자들의 응급실 폭력은 명백히 법률 위반인데도 제도 미비로 응급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무방비로 폭력에 노출돼 있다”면서 “현재 공권력은 응급실에서는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탄했다.

여기에 응급의학과 원가보전율이 60%에 그치다보니 병원측에서도 투자를 꺼리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술에 취한 상태로 대화로는 좀처럼 통제할 수 없어 병원 기물을 파손하거나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물론 막무가내로 치료를 거부하면서 행패를 부려 공포감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 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현재 모두 검찰에 송치돼 실형이나 벌금형을 받거나 현재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며 “구급차나 병원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은 본인은 물론 다른 환자에게도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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