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바이러스 벡터(운반체)를 활용해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학계에서 나왔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것과 유사한 전략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레르기 및 전염병 연구소(NIAID) 연구팀은 재조합한 AAV 벡터를 활용해서 HIV 바이러스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임상 1상을 통해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결가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 4월 11일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아데노 관련 바이러스(AAV) 벡터 내 HIV 바이러스와 결합할 수 있는 VRC07 항체에 대한 유전정보를 담는 전략을 택했다.
HIV 바이러스는 체내 면역 세포인 T세포의 CD4 수용체에 결합해 면역능력을 무력화하는데, VRC07 항체는 HIV가 CD4에 결합하는 것을 차단해 바이러스가 면역을 무력화하지 못하도록 한다.
AAV 벡터를 몸에 주입하면 벡터가 내부에 들어있는 유전정보를 체내 근육세포로 전달한다. 이후 근육세포는 해당 유전정보를 활용, VRC07 항체를 생성하게 된다.
연구팀은 최소 3개월 이상 안정적인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을 받고 있는 HIV 감염 성인 8명을 대상으로 VRC07 항체 정보를 담은 AAV 벡터를 근육 내 주사했다. 이후 안전성과 약동학, 면역원성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8명 참가자 모두 혈액에서 측정 가능한 양의 VRC07을 생성했고, 특히 이중 3명은 최대 VRC07 농도를 충족했다.
또한 참가자 6명은 3년 추적 기간동안 안정적이고 최대 농도에 가까운 수준의 항체 생성이 이뤄졌다.
다만 참가자 중 3명의 경우 VRC07 일부에 대한 항약물 반응 징후를 보였고, 이중 2명은 VRC07 생산이 실제로 감소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로 우리는 한번의 주사를 통해 오랜기간 항체 생성을 유도할 수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이 기술은 앞으로 HIV 외에도 자가면역질환, 암 등 다양한 질환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팀 전략은 코로나19 백신에서도 이미 활용됐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 벡터가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단백질을 생성, 항체 발현을 유도한다.
다만 이번 연구와 비교하면 항체 생성을 직접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세포가 인식할 수 있는 항원 생산을 유도한다는 점이 다르다.
백신 분야 전문가인 김정기 고려대 약대 교수는 “일반적으로 항원 전략을 많이 쓰는데, 항체의 직접 생성을 유도했다는 점이 다르다”며 “그동안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는 사람에게 본격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많지 않아 연구 진척도가 낮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임상 데이터가 쌓인 만큼 앞으로 해당 분야 연구가 더 활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