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러시아가 한국을 비(非) 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현지 수출 제약사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지난 7일 정부령을 통해 자국과 자국기업, 러시아인 등에 비우호적 행동을 한 국가와 지역 목록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됐다.
비우호국가 목록에 포함되면 외교적 제한을 포함한 각종 제재가 가해진다. 한국 기업과 개인들의 모든 거래는 러시아 정부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러시아 은행들의 국제 은행간 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 배제로, 수출 기업들은 대금 결제를 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채무 상환 시에는 러시아 루블화를 써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된 이후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환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러시아 수출 의료제품 규모는 1억 달러(약 1235억원)다. 의약품, 의료기기를 포함한 것으로 전년 대비 160% 증가했다. 2019년 3200만 달러에서 2020년 3900만 달러에서 급등했다.
올해 들어서도 1월 한 달 동안만 600만 달러 정도 실적을 올리면서 코로나19 특수 속에 러시아 수출이 활황을 지속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국가' 명단에 포함되면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우선, 러시아로 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는 제약사들이 영향을 받게 됐다. GC녹십자는 2020년 기준 러시아 수출 물량 점유율이 67.5%를 차지했다. 액수로는 630만 달러(약 78억원) 수준이다.
한미약품은 사노피러시아를 통해 간판 품목인 고혈압치료제 '아모잘탄', '아모잘탄큐'를 수출하고 있다. 아모잘탄의 경우 2018년부터 최근 4년간 연평균 21%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LG화학도 사노피러시아를 통해 B형간염 백신 '유박스비'를 공급하고 있다. 대원제약은 자체 개발 신약 '펠루비'에 대한 러시아 품목 허가를 획득, 공식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의약품 수출업체는 물론 러시아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을 맡은 기업들도 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휴온스글로벌을 중심으로 한 휴온스글로벌 컨소시엄에는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휴메딕스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컨소시엄은 러시아국부펀드(RDIF)의 요청으로 스푸트니크V와 스푸트니크 라이트를 병행 생산하게 됐지만, 이번 제재로 일정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수앱지스, 보령바이오파마, 큐라티스 등이 합류한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의 경우 이미 스푸트니크V, 스푸트니크 라이트 초도 물량 생산을 마쳤지만, 아직 출하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원료의약품 수입 가격 인상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각종 제재로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중국과 인도 등 주요 원료 생산국 내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수입가격이 20~30% 정도 인상됐는데, 여기에 유류비 등 운송비 증가와 각종 제재까지 더해진 것이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국내 전문의약품의 경우 보험 등재로 약가가 고정돼 있는데, 원료약 가격 인상으로 생산단가가 오르면서 제약사들이 큰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이런 부분을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의약품 공급부족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