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지난 2월 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일대 파란이 불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가 상장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포괄공시에 대한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이다.
새로 시행된 코스닥 제약‧바이오기업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은 ‘임상시험’과 ‘기술이전’, ‘품목허가’ 등 3가지 요소에 대한 강화를 골자로 한다. 새 가이드라인은 대체로 기업 정보공개 의무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설정됐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이번 공시 가이드라인 변경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기술을 토대로 기업을 운영하는 바이오업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제조업 기준 위주로 마련됐다는 것이다.
데일리메디가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을 만나 이번 공시 가이드라인에 대한 제약‧바이오업계 반응을 들었다.
“일반 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공시 기준 강화 취지 자체에는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이번 새 공시 가이드라인은 기술계약이 생명인 바이오업계 특성과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승규 부회장은 인터뷰에 앞서 바이오업계가 이번 새 공시 가이드라인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바이오업계와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한 검토 및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부회장은 “공시 기준을 명확하게 해서 정보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은 업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다만 이번 기준에서 산업적 측면과 바이오기업의 사업 모델에 관한 이해도가 부족한 요소들이 있다. 이런 부분들이 아쉽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업계 가장 우려되는 사안 '기술이전'
이 부회장에 따르면 바이오업계가 이번 가이드라인 중 가장 우려하는 요소는 ‘기술이전’에 관한 공시 기준 강화다.
새 가이드라인은 기업이 기술이전에 관한 포괄공시를 진행할 때 ▲기술이전 중요성 판단 기준에 매출액 요건 추가 ▲기술이전 공시에 마일스톤‧로열티 금액 표시 ▲기술도입 계약 시 상대방 정보 추가 등을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는 “기술이전 시 일반적으로 마일스톤과 로열티 등은 일부만 공개하고 비밀유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새 가이드라인의 기술이전 항목은 ‘라이선스 인’(기술도입)과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모두에 부담을 안겨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해외 파트너사의 기술도입을 시도하는 기업은 이런 내용의 공개를 상대 기업에 요청해야 한다”며 “결국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이다. 최악의 경우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에서 국내 기업과의 거래 자체를 꺼리게 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재검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술수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부회장은 “기술수출하는 입장에서 가장 부담되는 것은 파트너사 관련 내용이다. 해외의 경우 빅파마들이 기술도입을 할 때 본사가 아닌 해당 파이프라인 관련 자회사를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 진행 때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외부 공개할 때는 민감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우려감을 피력했다.
이어 “기술수출은 반환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는 사실 실패라기보다는 거쳐야 할 시행착오”라며 “반환 이후 질환을 바꾼 뒤 재시도해서 시장 진입에 성공한 약들도 많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술수출에 대한 반환을 실패로 규정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결국 이런 사항들이 다 공개된다면 연구 전략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받는다”고 호소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기술이전 관련 가이드라인 방향성이 제약‧바이오기업의 ‘기술특례상장’이 가진 방향성과 상충한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기술특례상장은 결국 기술에 주력하는 기업들의 성장을 돕겠다는 취지 아닌가. 하지만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술로 승부하는 기업들이 기술계약 시 그 조건을 다 공개해야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술계약 협상에 부담을 주고 기술로 먹고사는 기업들의 생존과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중복 검증‧개발비 등 상승 초래 바이오업체 부담
이 부회장은 ‘임상시험’ 관련 공시 가이드라인도 다소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임상시험 종료 보고서’는 가이드라인 공시 대상에서 빠진다. 대신 임상수탁기관(CRO)으로부터 임상시험 결과보고서(CSR)를 제출받았다면 공시 대상에 포함된다.
또한 임상시험 결과 공시 CRO가 제출한 1차 평가지표 통계값 및 통계적 유의성 여부를 충실히 기재해야 한다. 통계적 유의성 검증이 면제된 경우에도 CRO 확인을 거친 뒤 관련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임상시험 공시에 CRO의 데이터 공개가 사실상 의무화되는 셈이다.
그는 “CRO 데이터를 공시로 전부 공개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CRO의 임상 자료들은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 번 검토를 마친 자료들이다. 그런데 이를 다시 한번 대중에 공개하라고 하는 것은 중복 검증이다. 식약처 권위에도 손상이 갈 것이다. 또한 CRO에 대한 비용상승 및 전반적인 제약개발 비용 상승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분명 임상시험 관련 공시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며 “CRO 결과보고서를 전부 공개하기는 어렵겠지만, 개괄적 내용을 담은 요약본을 공개토록 한다면 주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부실공시로 인한 피해를 막는 동시에 기업들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결국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바이오기업들이 건강한 공시를 할 수 있도록 상장유지조건을 업계의 특성에 맞게 다변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상장유지 조건들이 대부분 기술개발기업보다는 제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조건 충족을 위해 무리한 주가 띄우기 공시를 하거나 기형적 방식으로 매출을 맞추려는 관행들이 있었다”며 “이를 바꾸려면 결국 상장유지조건을 기술개발 기업에 맞게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을 위해서는 상장유지조건의 다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