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로슈진단의 최신 코로나19 진단장비 ‘코바스 8800(cobas 8800 system)’가 예상 밖의 부진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번 가동에 1000여 건의 PCR 검사가 가능한 획기적인 성능으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금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 이후 아직까지 도입한 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한국로슈진단에 따르면 현재 코바스 6800(cobas 6800 system)’을 도입한 국내 기관은 27곳이다. 반면 상위 모델인 코바스 8800을 도입한 국내 기관은 ‘0곳’이다.
병원들은 오히려 하위 모델인 코바스 6800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시간 당 검사 건수는 코바스 8800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내 검사 수요를 감당하기엔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또 공간과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기기 크기와 비용 역시 구입 결정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식약처는 이 기기들을 기반으로 한 ‘코로나19-독감 동시진단 검사(cobas SARS-CoV-2 & Influenza A/B)’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코바스 6800/8800은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SARS-CoV-2) 및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진단에 국내 사용이 가능해졌다.
하위 모델인 코바스 6800이 8시간당 384건의 검사가 가능한데 비해 코바스 8800은 8시간 당 960건의 검사 결과를 제공한다. 단순 검사수로 살펴보면 2.5배 성능이 향상됐다.
여기에 시약·소모품 교체에 필요한 사람의 작업 횟수도 개선됐다. 코바스 6800은 8시간 당 1회 확인이 필요한 반면, 코바스 8800은 4시간 당 1회로 번거로움이 덜어졌다.
그러나 뛰어난 성능에 비해 정작 국내 병원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식약처 승인 후 새 진단 장비를 들인 대형의료기관들도 대부분 하위 모델을 선택했다.
자금력이 있는 대형병원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포착됐다. 국내 최대 규모 의료기관인 서울아산병원도 최근 코바스 6800을 도입했으며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인 충남대병원 또한 같은 기기를 추가로 들여왔다.
이와 관련, 일선 의사들은 "국내 실정에 더 적합한 기기가 선택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코바스 8800을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미국 의료기관과 달리, 상대적으로 검사자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선 코바스 6800으로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8월 말 기준 국내 누적 진단검사수는 6285만건인 한편, 미국은 누적 5억8669만명에 대해 검사가 실시됐다. 현재 미국에선 백 여 개 기관이 코바스 8800을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A 교수는 “현재 대부분 주요 기관은 코바스 6800을 도입한 상태인데,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선 이 기기로도 대다수 지역의 검사수요를 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코바스 6800를 운영 중인 병원에선 상위 모델을 구매하기보다는 같은 기기를 한 대 더 설치해 다른 기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비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장비 크기나 비용도 현실적인 고려사항이 됐다.
코바스 6800은 가로 2.92m, 세로 2.16m, 폭 1.29m의 작지 않은 덩치다. 코바스 8800은 여기서 가로 길이가 1.3m 가량 더 넓다. 제한적인 공간에 새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선 크기도 중요한 조건이다.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수 억원 대 고가의 기기인 만큼 도입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제조사인 로슈진단 측은 향후 수요 증가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바스 시리즈의 최근 판매 실적과 관련해서 한국로슈진단 관계자는 “코바스 6800과 8800의 차이점은 처리양(throughput)인데, 병원에 따라 대용량 검사가 필요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병원들이 적합한 옵션의 기기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감염병 팬데믹을 경험하며 대용량 자동화 검사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으며, 또 앞으로 코바스 시리즈는 지금보다 다양한 분자검사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코바스 8800과 같은 대용량 분자장비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