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행위의 범위와 권한을 두고 보건복지부가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지만 의료계를 비롯해 한의계, 간호계, 의료기사 등 직역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직역 간 갈등을 조율하고 중재하는 기능이 오히려 이전보다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허용’ 등을 담은 2015년 규제기요틴 민관합동회의 내용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는 올해 상반기 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기기별 유권해석을 내릴 계획을 밝혔다.
이후 한의계와 의료계 간 신경전이 날카로워졌고 대립의 강도 역시 더욱 세졌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사단체는 성명을 내고 거세게 반발했고, 대한한의사협회와 참의료실천연합회 등 한의사단체 역시 재반박하며 유권해석을 촉구했다.
의협이 "정부는 국민 건강과 국가 보건의료체계 수호를 위한 전국 11만 의사회원들의 전면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고 반면 한의협은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의사들이 직능이기주의로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복지부 저울질에 혼란·대립 심화
복지부의 유권해석 전후로 일어나는 직역 간 갈등과 논란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복지부는 ‘간호조무사도 요양병원의 당직 의료인에 포함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이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마찰로 이어졌다.
복지부는 당직의료 중 간호업무는 원칙적으로 간호사가 담당해야 하지만,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에 따라 요양병원은 간호사 인력을 간호조무사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간호인력 2/3 이하를 간호조무사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당시 대한간호사협회는 "보건복지부가 유권해석을 철회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력 반발했다.
특히, 장성요양병원 화재참사를 계기로 보건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할 복지부가 오히려 이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물리치료사와 간호조무사 간 마찰도 있었다.
지난 2012년 복지부에서 ‘한의사 감독 하에 간호조무사가 물리치료를 돕는 행위는 간호조무사가 할 수 있는 진료보조업무에 해당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오자, 물리치료사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촛불시위와 거리농성뿐 만 아니라 일부 물리치료사들은 한강 투신 시도 및 삭발도 강행했다.
◆ 국민건강 직결 중립적이고 공익적 잣대 절실
이처럼 보건의료분야는 다양한 입장과 첨예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하지만 그들의 '밥그릇 싸움'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국민의 건강,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므로 보다 중립적이고 공익적인 잣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법 등 관계 법령은 광범위하고 그 정의 역시 모호하다.
가령, 한의사와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구분에 대해서는 ‘한의사가 한방의료와 한방보건지도에 종사함을 임무로 하며(제2조 제2항), 의사·한의사·치과의사 등 의료인은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제27조 제1항)한다’는 내용 정도다.
결국, 각 사안은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 및 정부 부처의 유권해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각 직역단체가 재판부의 결정과 정부의 해석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하지만 사법부 판단이 나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막대하다. 각 직역의 반발과 압박 속에서 정부와 국회 결정 역시 더딜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만큼 직역 간 갈등과 사회 혼란도 가중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취약한 소통 능력도 직역 간 갈등을 키우고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임채민 보건복지부장관은 직능 간 의견을 수렴해 갈등을 조율하는 기구인 ‘보건의료직능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법조인을 포함한 7인의 공익위원과 7개 보건의료직능단체 추천위원을 포함해 총 15명이 주요 안건을 두고 매월 1회씩 논의를 가졌다.
각 직역 간 의견을 조율하고 수렴하는 일종의 공론장이었던 셈이다. 지난 해 초까지만 해도 복지부는 직능발전위를 상시기구로 격상시키는 등 운영형태를 바꾸는 작업을 착수한다고 했다.
당시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이견이 표출된 사안이 적지 않은 만큼 실효성을 거두는 방안이 무엇인지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가시적인 결과물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직능발전위는 임기가 만료돼 현재 해산됐고, 그 이후 각 단체와 법조인들이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안건을 논의하는 자리는 드물어졌다.
7개 보건의료 직능단체 중 한 기관의 대변인은 “직능발전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다. 지난 2012년, 2013년에는 한달에 한, 두 번씩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6~7개월 동안 회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산하 3개 부처의 각 관계자에게 현재 직능발전위의 운영상태 등에 대해 묻자 “모른다”, “(직능발전위는) 한시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안다”는 등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