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노인정액제' 해법 없나
'건보 보장성 강화 역행-개선 방안 마련하지 못한 정부 책임 커' 비판론
2015.01.15 18:25 댓글쓰기

지난 2010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의원과 한의원에 동일하게 적용하던 정액제 적용 본인부담 기준을 투약처방 하는 한의원만 2만원으로 올리고, 본인부담금을 1500원에서 2100원으로 상향조정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그러나 이후 수가 인상으로 인해 의원급 외래에서는 노인들이 부담하던 정액 1500원을 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의사와 환자 간 불필요한 마찰이 발생하는 등 개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건보재정 절감 위해 도입된 노인 본인부담 경감제


노인 외래본인부담 정액제도는 65세 이상 환자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외래진료를 받아 총진료비가 1만5000원보다 적게 나오면 본인부담금을 일괄적으로 1500원만 내는 정책이다. 총진료비가 1만5000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정률제를 적용해 30%를 내야 한다.


2000년 7월부터는 노인 본인부담 경감 연령기준을 만 65세로 낮춰 수혜대상을 확대하고, 의약분업 실시를 전후해 이뤄진 수가인상으로 진료비가 증가함에 따라 2001년 1월 정액구간을 기존 1만2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적용했으나 본인부담액은 인상하지 않았다.


2007년 8월에는 그 간 외래본인부담 정액제도가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고액·중증환자보다 소액환자에게 더 큰 혜택을 주는 제도로 변질돼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수가 인상 vs 본인부담금, 격차 갈수록 벌어져 ‘혼란’


65세 이상 노인의 외래 본인부담금 정액제 상한액(1만5000원)은 지난 2001년 7월 이후 변동이 없는 상태다. 그 사이 수가인상 등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노인환자 진료비가 정액제 상한액인 1만5000원을 넘는 경우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현행 노인정액제 하에서는 총진료비가 1만5000원에서 단 1원이라도 많아지면 무조건 환자가 해당 진료비의 30%를 본인부담해야 한다.


1만5000원의 진료비가 나왔다면 환자는 1500원만 내면 되지만 1만 5001원이 되면 환자 본인부담금이 4500원으로 3배 가량 뛰어오르는 것이다.


그러자 개원가에서는 여전히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그 동안 노인층 외래진료비를 경감시켜 의료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정액제가 갈수록 본인부담이 확대되고 있어 환자와 의사 간 마찰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원협회에 따르면 2014년 진료수가는 불과 3%밖에 인상되지 않았지만 초진 후 주사만 처방해도, 혹은 재진 후 물리치료만 시행해도 본인부담금이 4500원 이상으로 올라간다.


이에 해당 노인 환자들은 정액제를 모르는 상태에서 지난해와 달리 별다른 의료행위의 변화 없이 본인부담금이 1500원에서 4500원 이상으로 3배 이상 높아지면서 마치 의사들이 폭리를 취하는 듯 오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관악구 소재 A원장은 “본인부담금으로 종일 노인들과 싸운 날도 있다. 마치 의사들이 도둑인냥 매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심지어는 진료비를 던지고 나가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1500원만 지불하고 나가는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러한 항의에 지쳐 총액을 1만5000원 이하로 맞추기 위해 주사나 물리치료를 무료로 시행하고, 필수적인 처방은 줄이거나 불법인줄 알면서도 본인부담금 자체를 감면해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대한의원협회 관계자는 “환자는 의사를 불신하고, 의사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환자에게 비난을 받게 돼 환자를 불신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하겠는가”라고 성토했다.


의원협회 관계자는 “해당 환자들은 적은 비용을 부담하는 소액진료 내에서 의료이용을 하고자 하는 유인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충분치 못한 진료로 추가적으로 외래방문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의사는 되도록 상한액을 넘지 않도록 투약이나 검사, 처치 등을 기피하게 되는 등 의료이용의 왜곡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2년 넘도록 기준 바뀌지 않는 현실”


대한노인의학회 관계자는 “2001년 이후 노인 외래본인부담 정액제의 적용 구간 변동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어 노인층의 진료비 부담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보장성 강화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인의학회 또 다른 관계자는 “노인층에 대한 외래진료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액제 적용구간을 상향조정해야 한다. 특히 의원의 정액구간을 높여야 노인층이 외래 정액제도의 도입 목적에 맞는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구체적으로는 65세 이상 노인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외래진료를 받을 경우 적용되는 정액기준을 현행 1만5000원에서 최소 1만9000원까지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노인복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노인 외래본인부담 정액제도가 그간 진료비 증가율을 반영하지 않아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정액제 적용구간을 1만9000~2만원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의 목적을 살리기 위해선 매년 노인진료비 현황을 정확히 분석해 적정수준의 정액구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국회 차원에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위원회 양승조 의원은 2014년 국정감사에서 “노인외래 정액상한금액이 14년째 동결되면서 노인

들 의료비를 지원한다는 본래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당시 문형표 장관은 “적극적으로 제도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는 각각 성명을 내 “이번 기회에 노인정액제 개선이 현실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협은 “빠른 시일 내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논의체가 구성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의사회 역시 “더 이상 말로만으로 끝나서는 안되며 반드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다각도로 앞장서서 현안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간극 여전히 커…현행 유지 방침에 의료계 ‘부글부글’


하지만 노인정액제 개선에 기대감을 가져왔던 의료계에 최근 복지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떨구게 하면서 여전히 간극이 커 보임을 실감케 했다. 의료계는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못내 아쉬움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4일 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노인환자 외래본인부담 정액제와 관련해 현행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전방위로 의료계가 한 목소리를 내왔음에도 “근거 없다”며 현행 1만5000원 상한액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현재 입장이다.


복지부는 “개선 여부를 검토한 것은 맞지만 현행대로 유지키로 결론 내렸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7명이 정액 구간에 위치할 정도로 수혜자가 많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는 즉각 반발에 나서고 있다. 노인의 의료접근성을 저해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를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실제 의협은 “원칙적으로도 노인들은 의료비에 대한 큰 경제적 부담없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접근성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정책 방향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난색을 표했다.


결국 건강보험재정을 이유로 이를 외면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져버린다는 것이다.


의협은 “노인의 의료비 부담을 높이면, 경제적 부담이 되는 노인들이 의료기관 이용을 기피하고 이는 노인 경증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문제는 건강보험재정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진료비에 대한 부담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 지원을 증액하는 실질적 방안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

다.


더욱이 의협은 “노인외래 정액제를 유지해 노인의료비 증가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며 복지부의 근시안적인 정책 방향을 꼬집었다.


의협은 “복지부 장관도 적극적으로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했음에도 말을 바꾸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무책임한 처사”라며 "지금이라도 노인정액제 현행 유지라는 정책 방향을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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