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소수자 의료, 이제는 공론화 필요'
고대안암병원 젠더클리닉 황나현 교수
2021.12.24 17:17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과거에는 공론화가 어려웠던 성소수자에 대한 담론이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성소수자' 수업이 처음 개설됐고, 성전환수술이나 호르몬치료를 받는 성별 불일치(Gender Incongruence) 환자 등 성소수자를 위한 ‘젠더클리닉’ 운영도 이뤄지는 중이다. 아직 국내 의료계에서 생소한 성소수자 의료를 위해 의사들이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데일리메디가 최근 상급종합병원 중 처음 젠더클리닉을 개설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황나현 교수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Q. 젠더클리닉이 곧 1주년을 맞는다. 그간의 소회는
환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믿고 갈 수 있는 클리닉이 생겼다는 게 좋다고 하시더라. '젠더클리닉'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병원 내부에서도 다른 진료과 의료진에게 관심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편견도 여전하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개설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내 벤치마킹할 만한 곳이 없어 외래 대기장소 조성이나 성중립화장실 설치 등 시설적인 면까지 고민해 병원에 직접 협조를 요청했다. '젠더클리닉'이라는 이름 또한 반드시 성전환 환자만 방문하는 게 아닌 성별에 관해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 환자들도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지어졌다. 해외에서는 성소수자 진료에 무엇을 배려하고 우선해야 하는지 의대에서 미리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국내는 아직 쉽지 않다.
 
Q. 성소수자들이 병원 이용 과정에서도 차별이 있었을 것 같은데
트랜스젠더의 경우 남들과 다른 모습에 불편한 시선을 받을 때가 많다. 또 문진할 때 소위 ‘어디까지 수술했나’라든가 ‘아래도 했나’라는 등 개인적인 질문을 갑작스럽게 하는 의료진도 있다. 아무리 환자로서 병원을 방문했다고 해도 그런 태도는 성소수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의 경우 파트너가 병원을 방문했을 때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어 느끼는 상실감과 자괴감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과 성소수자들을 접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고 익숙하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는 단지 가려져 있었을 뿐 앞으로 더 많은 성소수자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의사들끼리 대화를 나눠 보면 성소수자 환자들이 꽤 많이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환자들이 앞서 말한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 본인 말을 아끼게 되고 때로는 제대로 진료를 받기도 어렵다. 오히려 의사들이 답답해 하기도 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Q. 젠더 불일치 의료 특성은 무엇인가
벨기에 겐트대학병원 연수 당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다학제 진료를 접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시스템을 꼭 도입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성소수자 진료에서는 다학제 운영이 꼭 필요하다. 일례로 호르몬 치료를 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 장기적으로 이어졌을 때 암 이나 성인병과 같은 부작용 관리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외적 변화뿐만이 아닌 좀 더 안정적인 삶의 변화를 위한 다방면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유방내분비외과, 비뇨의학과, 내분비내과 등 여러 진료과와의 긴밀한 다학제 체계를 구축해서 전문적이고 포괄적인 치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Q. 병원이나 의료진 입장에서 고충은 없는지
진료 과정에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 많다. 입원실 배정도 쉽지 않다. 성별 정정이 시행되기 전에는 어느 성별의 병실로 배정해야할지 의료진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부분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또한 통계적으로 성소수자의 약 48%가 한번쯤은 자살 시도를 한다.
병원에서 이런 환자들을 입원시킬 때 매우 조심스럽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 1인실을 많이 쓰게 되는데 사실 이것도 쉽지 않다. 성소수자는 상담 외에는 사실 거의 모든 치료를 비급여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법적 문서의 성별 정정이 되기 전에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경제적 여건도 어렵다. 복합적인 문제다.

"의사들도 편견 갖지 말아주세요" 
"입원실 배정 쉽지 않은 상황에 대부분 비급여 진료로 차별금지법 절실"
"풀어야 할 과제 많은 성소수자 의료, 병원 차원 캠페인 준비 중"
 
Q. 성별불일치 환자를 위한 의료정보 상황은
예전에는 제대로된 의료정보가 부족했다. 하지만 요즘은 반대로 정보력이 매우 발달했다. 환자들이 해외 논문까지 찾아보고 직접 수술법을 상담하기도 한다. 한편 SNS등을 중심으로 퍼지는 잘못된 의료정보들이 매우 많은 것이 문제 같다. 환자들이 호르몬 치료를 공통적으로 받다 보니 여기에 익숙해져서 병원 지시를 따르지 않고 과잉으로 투여하는 경우도 있다.
 
Q. 그들에게 필요한 진료, 급여화 가능성은
젠더클리닉을 운영해 오면서 느낀 점이기도 하다. 결국 병원 안팎이 연결돼 있음을 느꼈다. 차별금지법이 아직 통과 되지 않아 진료 영역도 얘기하기 어려운 것 같다. 차별금지법에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여성과 종교인 등 다양한 영역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도 여전히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별 정정도 매우 힘들다. 정정을 위해서는 생식능력 제거수술뿐만 아니라 재건수술이 필요한데 사실 이를 원하지 않는 분도 있다. 성별 트랜지션(Gender Transition)은 지극히 개인한테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 계속적인 진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도 많다. 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적응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일을 의사 개인이 나서서 일일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TF팀을 꾸려서 대응하고, 사회사업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협업 통로를 모색 중이다.
 
Q. 성소수자를 대하는 동료의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최근 병원 방문객 및 의료진을 대상으로 성소수자와 관련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는데 일반인과 의사들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젊은 연령일수록 인식이 개선된 것을 알 수 있었고, 나이 든 남성분들일수록 이런 주제를 아예 접해보지 않은 데서 나오는 적대감이나 무의식적인 편견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와 조금 다른 모습의 환자를 마주치더라도 따뜻한 눈빛으로 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더 이상 나와 먼 얘기, 상관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내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일 수도 있고 가까운 주변에도 있을 것이다. 계속 공부를 하고 배워가고 있는 상황이다. 안암병원 내부적으로 성소수자들이 편히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뱃지나 팻말을 제작해 배포하는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아직 사례가 없는 분야를 하나 하나 개척해 나가는 게 쉽지는 않지만, 더 이상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에서 외롭게 치료받고 수술받는 환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해외 유수 클리닉 못지 않은 수준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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