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잠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중학교 입학 관련 이사 문제 때문이었다. 강남 등을 생각하다가 인근 괜찮은 중학교 쪽으로 긴급 유턴했다. 여기에는 꼼수가 전제됐다. 바로 위장전입이었다.
가까운 지인이 흔쾌히 받아주시겠다고 해서 준비를 하다가 중단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자괴감 등 왠지 찝찝했다. 와이프랑 논의해서 없던 일로 하고 현 거주지로 이사했다. 당시에는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도 잘 적응했고 괜찮은 결정이었다.
근래 새 장관 및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위장전입이 화두가 됐다. 특히 9월11일 열린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8차례의 위장전입은 ‘사회적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그는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보도 등에 묻혀 슬그머니 임명됐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5대 인사원칙 배제를 떠나 과연 그가 준엄한 9인의 헌법재판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법의 최고 심판을 내릴 사람이 불법인 위장전입을 8차례나 하면서도 청문회에 나선 그의 뻔뻔함과 내로남불이 현 사법부 불신과 직결된다.
위장전입 사유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고 가정사로 얼버무려졌다. 아들 공부 등이 언급되는걸 보면 그도 자식의 진학 때문에 불법적인 ‘위장전입’ 멍에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예전에는 교육열, 맹모삼천지교 사례 등으로 긍정적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젠 교육병, 교육망국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한민국이 오마바 前 미국 대통령도 극찬한 교육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최단기간 압축성장과 민주화 등을 이뤘으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급기야 국운(國運)을 뒤흔들 수 있는 악성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과열로 초래된 집값 폭등, 저출산 등 각종 망국론 근원에 바로 잘못된 교육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국민들 행복감 역시 교육열에 반비례하다. 교육이 과거처럼 신분상승 사다리가 아닌 신분사회를 고착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금수저, 흙수저 등 계급론까지 번졌다. 일각에서는 우리 교육이 승자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루저, 소위 패배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전락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교육의 본연적 기능인 지(智), 덕(德), 체(體)를 포함한 전인교육과 인성(人性) 함양,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하는 품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예전에 인기를 얻었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영화가 있었다. 사회가 얼마나 성적에 목메면 이런 영화까지 제작됐을까 아이러니다. 아직도 고등학교 성적이 대학입학의 가늠자가 되고 대학 이름이 평생 성공을 보장하는 담보물처럼 여겨지다 보니 그 병폐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학벌 타파가 그렇고, 취업 현장에서는 새로운 패턴이 도입됐다. 블라인드 면접이 한 예다. 공기업에 일부 대기업이 그런 방향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런 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원 뺑뺑이가 일상이다. 대학 졸업 후에는 공시학원에 매여 있는 젊은이가 수십만명이나 된다.
12년 노력의 결실로 대학 입학 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다. 취업이 안되다 보니 결혼을 포기한 사람이 늘어나고 그러다보니 아이는 언감생심이다. 세계 최저출산 나라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출생아수는 역대최저인 35만 8000명이다. 더 암울한 것은 올해는 30만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동향을 보면 금년 7월 출생아 수는 2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2400명(8.2%) 감소했다. 7월 기준 출생아 수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1년 이후 가장 적다. 작년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합계출산율이 1.05명으로 급락했고 금년에는 1.0명도 안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 역시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 (SDSN)’에서 매년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를 매기는데 한국은 59위로 기록됐다. 무역규모 세계 10위권에, GDP 20위권 후반의 상황과 대비되는 현실이다. OECD 국가 중 노인 포함 성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불명예와 아픔이 바로 우리나라 현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다. 대학생들을 설문조사한 내용인데 10명 중 8명은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그 곳은 학교가 아니라 사활을 건 ‘전장(戰場)‘ 이었다”는 것이다. 미국(40.4%), 중국(41.8%), 일본(13.8%) 학생들보다 한국이 월등히 높다.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치열한 전장이 되는 이유로는 ‘좋은 대학을 목표로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으로 설명했다. 반면 함께 하는 광장(廣場)이라고 답한 한국 대학생은 12.8%였다. 일본 75.7%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100세를 사는 시대에 20세 이전 생활에서 타인과 더불어 사는 인성(人性)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터득해고 함양하지 못하고 전쟁터의 살벌함을 느껴야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유난히 팽배한 시기, 거짓, 질투, 증오 등 나만 잘살아야겠다는 이기심이 판을 치는 것도 다 이런 연유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사안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