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다영 기자]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검토한다는 정부 발표 이후 의료계에서 복지부가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게 들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한의사 사용 가능 의료기기로 판시한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 5종 의료기기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국정감사 서면답변을 국회에 제출했다.
복지부는 이번 결정은 2013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5종의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던 판례를 근거로 삼았다.
대한안과학회·대한안과의사회와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는 "해당 판결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5종의 안과 의료기기는 전문의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판단이며 당시 전문가 의견조회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안과학회·의사회에 따르면 안압측정기는 자동안압측정기만 검사 결과가 숫자로 표현되지만 측정할 때마다 오차가 많고 변동성이 크며 안압측정기만으로 녹내장을 진단할 수 없다.
세극등현미경은 주관적 검사로써 결과가 자동적으로 추출되지 않는다. 의사들 내에서도 안과전문의가 아니면 정상상태와 병적인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
자동시야측정장비는 검사만 놓고 임상 질환여부 판단이 불가능하며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안경사도 자동굴절검사기기만 사용 가능하고 시야계측기는 의료법상 안경사가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됐다.
청력검사기 역시 검사 결과 해석이 중요하다. 검사 결과를 보고 전문가적 시각으로 질환 여부와 필요한 치료를 판단하는 것은 의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대한안과학회와 대한안과의사회는 "당시 헌재는 재판과정에서 전문가단체인 의협이나 대한안과학회, 대한안과의사회에 의견조회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며 "한의사가 관련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오진 증가와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은 확실하다. 보험등재 후 급여화하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명백한 오류를 전제로 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복지부의 답변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앞으로는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며 "학회와 의사회는 국민 생명과 국민 안건강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정책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도 이번 복지부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송병호 회장은 "복지부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의 근거가 된 헌재 판결에서는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비전문가들이 국민 행복추구권 등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단, 송 회장은 복지부가 검토하겠다는 입장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전문가적 입장을 고려한다면 5종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보험급여를 인정할 것 같지는 않다"며 "이를 인정한다면 복지부 스스로 의료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만일 보험적용이 이뤄진다면 의협, 대개협 등과 힘을 합쳐 다같이 대응할 것"이라며 "의료계 내 각 직역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개원의협의회(이하 대개협)도 "복지부의 한의사 의과의료기기 건강보험 적용은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대개협은 "현대의료기기의 발전은 의학의 발전이다"면서 "의학 원리를 기반으로 한 의료기기 사용을 주장하면서 한방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5종 의료기기는 의학 원리에 기반한 것으로 당연히 의사에 의해 사용돼야 한다"면서 "의학적 검사가 위험성이 없다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단순검사로 치부해 명확한 의·한의사 면허 범위를 허문다면 모든 전문분야의 신뢰성 또한 허물어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대개협은 또한 "이번 복지부 답변은 의사면허를 부정하고 의료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며 "국민 건강권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타협이나 이해관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를 직역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며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는 한방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