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수첩] 국립중앙의료원(이하 NMC)으로서는 아프고 아픈 '악몽(惡夢)'이었다.
금년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NMC내 다양한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의료기기 영업사원 대리수술을 비롯해 마약류 의약품 관리부실, 독감백신 불법구매 및 투약, 원지동 이전 문제 등. 정기현 원장이 반성문을 써내려가듯 내놓은 “참담하다”, “창피하다” 등의 발언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그런데 언급된 많은 문제 사안 중 ‘NMC의 잘못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오는 2022년 예정된 NMC 서초구 원지동 이전 사안이다. 지난 2001년 서울시가 서초구 일대를 추모공원 부지로 확정하면서 주민 설득방안으로 NMC 원지동 이전을 제안했고, 이후 18년째 국립중앙의료원 원지동 이전은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중앙감염병병원 설립 문제까지 겹쳤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가 중앙감염병병원 도입을 결정했다. 2016년 법적근거 마련을 시작으로 지난해 예산에 설계비 반영, 같은 해 복지부·서울시·서초구 실무회의 등을 거쳤으나 서초구가 돌연 중앙감염병병원 설립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 사안은 올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원지동 이전과 관련해 복지부와 서울시에만 맡기지 말고 원장이 직접 계획을 세우라”고 다그쳤다. 같은 당 신동근 의원 역시 “부자 동네로 이사해 부자 상대로 진료한다는 말 듣지 말고, 서민과 중산층의 사랑을 받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은 “정기현 원장이 직을 걸고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NMC 원지동 이전 문제 만큼은 정 원장이 나서서 수완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메르스 등 감염병 관리와 서울지역 권역외상센터 임무 등 국가 공공의료체계 확립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중차대한 사안이다. NMC는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곳이지, 공공의료정책을 만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적으로도 그렇다. 지역여론을 환기시키거나 도시관리계획(용도변경)을 논의할 수 있는 주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혹은 기초자치단체다.
특히 선출직인 지자체장이나 기초자치단체장은 기피시설 유치를 꺼려하는 지역여론에 민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복지부를 비롯해 중앙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요컨대 NMC는 소프트웨어를 운용하는 곳이지, 하드웨어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복지부의 강 건너 불구경은 서초구의 ‘NMC 중앙감염병병원 별도 건립 저지대책’ 내부문건 파문에서 정점을 찍었다.
NMC 중앙감염병병원 별도 건립 저지를 위해 서초구는 서초구민 비상대책위원회(대표단) 구성·운영방안 등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복지부는 “해당 논란과 관련해 복지부가 할 수 있는 대응이나 수단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10일 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NMC 감염병전문센터 설립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처리하겠다”고 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내놓은 반응이다.
18년을 기다렸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NMC 원지동 이전이 부지 선정부터 원점 재검토로 돌아간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할지 모른다. 원지동 이전을 위해 리모델링도 미뤄온 NMC는 정 원장이 자인(自認)한 것처럼 공공의료기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고 있는 상태다. 이제는 마른 수건에 물 짜듯 NMC가 내놓는 대책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복지부 포함 윗선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데일리메디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