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나는 원칙주의자입니다. 특별한 정의감이 작용했다기 보다 배운 대로 의료감정을 했을 뿐입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한석주 교수의 한마디는 단호했다. 그는 지난11월11일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이뤄진 ‘전국의사궐기대회’의 도화선이 된 횡격막 탈장사건에 대한 의료감정을 한 주인공이다.
재판부는 해당 의료진의 과실 여부 판단을 위해 총 3개 기관에 의료감정을 의뢰했고, 의사들의 후속조치에 아쉬움을 지적한 한석주 교수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법정구속한 바 있다.
자칫 의사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으로 지목될 수 있음에도 원칙주의자로서 소신을 잃지 않았다. 실제 해당 감정서로 적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비단 의료진 구속과 관련한 의료감정 뿐만이 아니다.
‘나영이 주치의’로 유명한 그는 영남제분 회장 부인의 여대생 청부살인사건 관련 허위진단 발급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문제 등 민감한 사회적 현안에 적극 문제를 제기했다.
한석주 교수는 “횡격막 탈장사건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검토했다”며 “의사 측이 소아외과 의료감정 필요성을 주장해 재판부에서 내게 의뢰한 것이며, 증거채택 여부는 판사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감정을 진행하면서 총 3단계를 거친다. 먼저 의무기록을 꼼꼼히 살피면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해당 사실관계만으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의학적 판단을 내린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감정 의뢰사항을 확인한다. 편견 없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나름의 ‘객관적인 틀’이다.
한석주 교수는 “의료진이 법정구속된 것에는 나도 놀랐다”며 “검찰이 판단자료로 사용한 게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이었고, 중재원 감정은 내 감정서와 대동소이하다”고 답했다.
중재원·이대목동병원 등이 공통으로 ‘흉부 엑스레이(X-ray) 이상소견에 대한 추가조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한 교수에 따르면 흉부 엑스레이에서 ‘흉수 소견’이 확실히 보였고, 이는 결핵·폐암·농·횡격막 등 환자가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즉, 한석주 교수의 감정은 흉수 소견 자체로 횡격막 탈장을 집어낼 수는 없으나, 흉수 소견이 발견된 이후에 다음 조치가 필요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소신 기반 삶 후회 없고 의사가 환자에 ‘미안하다’는 의견 전달 법정 불채택 시스템 필요"
그러나 원칙주의자인 그의 행보는 불편함을 동반하는 일이 잦았다.
한석주 교수는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문제 제기시 협박전화를 많이 받았고, 횡격막 탈장사건 이후에도 항의가 많았다”면서도 “소신대로 살아온 것에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횡격막 탈장사건과 관련해 아쉬운 부분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체계를 꼽았다.
미국의 경우 ‘Sorry Works’가 있는데, 주 내용은 의료분쟁 중인 환자를 위로하더라도 이를 소송자료나 처벌 근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 교수는 “해당 재판부가 판결을 연기했는데, 이는 ‘합의’하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의사가 환자에게 ‘미안하다’는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의 본질은 의료사고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의사가 미안하다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건넬 수 있는 면책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