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기자. 기획 下]모든 시험에는 응시수수료가 수반된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소요되는 제반비용을 수험자에게 부과하는 시스템으로 시험 종류에 따라 응시료는 천차만별이다.
수험생들은 원하는 성적이나 자격,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스스럼 없이 응시료를 내고 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시험 한 번 치르기 위해 100만원에 달하는 응시료를 내야 한다면 해당 수험생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것도 사설 기관이 아닌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시험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국가시험 응시료는 100만원에 육박한다.
2019년도 의사국시 응시료는 필기시험 28만7000원, 실기시험 62만원 등 총 90만7000원으로 책정됐다.
더욱이 외국 의과대학 졸업자가 한국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예비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 금액은 필기 29만7000원, 실기 75만7000원 등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는 보건의료계 뿐만 아니라 공인 국가자격 시험 중에서도 가장 비싼 금액이다. 때문에 직종의 전문성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비싸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실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주관하는 보건의료 전문인력 국가시험 내년도 응시료를 살펴보면 치과의사 ·한의사·한약사가 각각 19만5000원, 약사는 17만7000원 이다.
간호사 9만3000원, 방사선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 ·의무기록사·임상병리사 11만원, 치과기공사·치과위생사 ·응급구조사 13만5000원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응시료다.
의사국시 응시료를 보건의약 분야 외에 다른 직역 국가시험에 견주면 그 격차는 더욱 심해진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건축기사 시험 응시료는 5만원, 변리사 10만원, 세무사 3만원이다. 금융감독원 주관의 공인회계사 시험 응시료 역시 5만원이다.
법무부가 주관하는 변호사 시험 응시료(20만원)가 그나마 비싼 편에 속하지만 100만원에 가까운 의사국시와 비교하기는 여전히 무색하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관계자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1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야 한다”며 “타부처 주관 전문가 시험과 비교하면 괴리감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메아리 없는 반발·질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발이 적잖았다. 당장 의사국시를 치러야 하는 의대생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했다. ‘흙수저는 환자 볼 자격도 없냐’는 피켓시위의 주인공 역시 의대생이었다.
의사 국가시험 응시료 논란은 지난 2009년 사상 첫 실기시험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실기시험이 의무화 되면서 의대생들의 의사국시 응시료 부담도 급증했다.
실제 첫해 의사국시 응시료는 필기시험 22만원, 실기시험 51만원 등 73만원으로 책정됐다. 기존에 20만원 남짓이던 수수료가 하루아침에 3배 이상 폭등한 셈이다
이후 2012년 84만5000원, 2013년 87만2000원, 2014년 89만8000원, 2015년 92만2000원으로 매년 2~3%씩 인상됐다.
이에 따른 반발도 이어졌다. 당장 응시료 부담을 겪어내야 했던 의대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실기시험 도입 이후 줄곧 의사국시 응시료 인하를 요구했다. 집단행동까지 나서지는 않았지만 의대생들의 불만은 계속됐다.
국회에서도 의대생들에게 힘을 실었다. 의사 출신인 문정림 前 국회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기동민 의원,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 등 여야를 막론하고 의사국시 응시료 문제를 거론했다.
이들 국회의원은 다른 국가공인시험 대비 의사국시 응시료가 과도하게 비싸다고 지적하며 국고지원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의사국시 응시료 문제는 지난 2014년 정점을 찍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을 특수법인화 시키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기대감이 상당했다.
사실 비싼 의사국시 응시료를 낮추기 위해서는 국고지원이 절실했고, 국시원이 법인화될 경우 정부 예산 책정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의대생들은 관련법 통과를 위해 전국 의대생 서명운동을 비롯해 국회 1인 시위, 탄원서 제출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고 국시원은 특수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했지만 기대했던 국고지원 예산에는 변함이 없었다.
국시원은 법인화 첫해 인건비와 관리운영비 등 68억원 중 17억원을 출연금 방식으로 교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의사국시 10.4%, 치과의사 11.8%, 한의사 10.4%, 간호사 12.3%, 약사 8.9% 등 직종별 응실 인하율 까지 추계했지만 관련 반영된 예산은 ‘0원’이었다.
의대협 관계자는 “국시원이 특수법인만 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소용없었다”며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 년째 ‘노력’만, 도돌이표 답변
의사국시 응시료 문제는 예비의사인 의대생은 물론 국회에서도 끊임없이 지적이 됐지만 뾰족한 대안은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지속적인 반발과 지적에 부담은 느낀 국시원이 지난 2016년 동결, 2017년 필기시험 1만5000원 인하해 준 게 전부였다. 의사국시 응시료는 여전히 90만7000원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위탁기관인 국시원 공히 ‘열악한 국고지원’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의사국시를 비롯해 보건의약 분야 국가시험 응시료가 높은 이유는 타 직역에 비해 낮은 국고지원이라는 얘기다. 예산이 부족하니 응시료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국회에 따르면 변리사와 세무사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경우 전체 국가시험 예산의 78.6%를 정부로부터 지원 받는다.
이에 반해 국시원의 정부 지원금 비율은 6%에 불과했다. 그나마 법인화 이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 2017년 국시원 예산 186억원 중 국고보조금은 17억 원으로, 9.14%였고, 2018년에는 전체 예산 210억원 중 10.95%인 23억을 지원 받아 처음으로 두 자리수를 기록했다.
국시원은 예산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특수법인으로 전환하고 정부 출연금 교부의 법적 근거도 마련했음에도 여전히 속시원한 예산 확보 소식은 전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되고 있지만 “응시수수료 인하를 위한 국고지원 확대를 위해 보건복지부 및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추진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 하는 중이다.
최근 열린 자체 이사회에서도 응시료 문제가 언급됐지만 국고지원금 증액의 어려움을 토로함과 동시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시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는 2021년 치과의사 실기시험 도입이 예정돼 있고, 의사 실기시험 시설 노후화에 따른 센터 건립 등 예산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우려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국시원 한 이사는 “의사 실기시험이 시행된지 10년이 넘은 만큼 관련 시설의 노후화를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필요 하다”며 “국고지원에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이어 “국고지원이 현재 비율을 유지할 경우 응시료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국시원 구조상 추후 수수료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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