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승원 기자] 지난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던 시위를 기념해 제정된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국내 의료계에서도 여자의사들의 위상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의사 12만1571명 중 여자의사 비율은 25.4%로 나타났다. 지난 1980년 13.6%, 2000년 17.6%를 넘어 이제 의사 4인 중 1명은 여자의사인 셈이다.
치과의사도 3만333명 중 27%, 한의사는 2만4560명 중 21%가 여성이었으며 약사의 경우 6만8616명 중 64%가 여자로 남자보다 많았다.
의대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의 의사 국가시험자 합격자 성비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여성의 비율은 32.8%였는데 2016년 39.1%로 늘었다.
전공의와 교수 가운데서도 여성의 비율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국 인턴의 32%, 레지던트의 35%가 여성이었다.
또한, 일명 빅5 병원이라고 불리는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은 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의 비율이 대부분 1대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사 수 급증 추세에도 의료계 여성 리더는 절대 부족"
의대생 중 여성의 비율 증가와 함께 전체 의사 중 여성의 비율은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문제는 의료계 지도부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제 40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서 김숙희 前 서울시의사회장이 의협 최초의 여성 회장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의협이 창립한 지 110주년이 넘었지만 아직 여자 회장은 나오지 못한 것이다.
국립대병원장의 벽도 여전히 높다. 한국여자의사회장을 지낸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김봉옥 원장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충남대병원을 이끈 것이 유일무이하다.
이에 한국여자의사회를 중심으로 “여의사는 25%지만 의료계 여성 리더는 5%”라는 문제 제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관련된 연구도 시행됐다.
실제로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상현 교수, 김봉옥 前 여자의사회장, 연세의대 병리학교실 홍순원 교수,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신현영 교수는 지난해 ‘한국 여의사들의 리더십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국내 의료계의 유리천장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의료계 고위직 내 성비불균형 문제를 지적하며, 여성의 리더십 개발을 위해서는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하도록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와 보육시설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구팀은 “일-가정의 양립은 리더십 개발에 핵심적인 것으로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의 문제 해결이 관건”이라며 “우리나라는 남편의 가사노동 참여가 매우 낮고 어린 자녀는 보육시설보다 친정이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는 경향이 높다. 남편의 가사노동 참여가 필수적이며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질 좋은 보육시설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여자의사들에게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경험이 제공돼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연구팀은 “파이프라인 이론에 따르면, 여성의 고위직 승진이 드문 이유는 여성이 승진 사다리를 오르는데 필요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여성의사들에게도 남성들과 같은 충분한 경험을 하게 해 동등한 리더십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국내 여의사는 전체 의사의 25%로 다른 공공부문과 같이 대학병원 및 의과대학의 고위직 여의사 과소 또는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사회적·교육적 노력들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