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승원 기자] 대정부 강경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때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쟁과 협상을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약분업 당시 투쟁처럼 전투에서는 이기고도 결과적으로 전쟁에서는 지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협상을 통해 실리를 취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철호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은 최근 의협 출입기자단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철호 의장은 “의협이 큰 위기고 우리나라 의료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강경 투쟁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투쟁만 해서 얻는 게 없으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도 있다”며 “의협 집행부가 제2 의쟁투라는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를 만들어 투쟁을 하고 있는데 전투에도 전쟁에서도 이기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협이 의쟁투를 출범하면서 대정부 전면 투쟁 태세로 돌입했는데, 향후 투쟁을 하더라도 대정부 협상 창구는 마련해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의약분업 때는 전투에서는 좋은 성과를 냈지만 전쟁에서는 패했다”며 “전쟁 중에도 협상 테이블이 있을 텐데 이를 유지해가면서 투쟁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번 대정부 투쟁이 단지 ‘투쟁을 위한 투쟁’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의장은 “임세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빠졌다. 여론에 밀려 법 하나 만들어주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다”며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도 투쟁은 중요하다. 투쟁 자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 간 최대집 집행부 회무에 대해서는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평(評)을 내놓았다.
이 의장은 “완벽한 집행부는 없다. 그런데 최대집 집행부가 회원이나 대의원의 니즈를 파악해 필요한 인물과 소통을 하고, 현안을 오픈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최대집 집행부도 열심히 하긴 하지만 대의원들이 보기에는 뚜렷한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집행부가 의욕적으로 회무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회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단수가 낮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면도 있다”며 “관심이 있으니 열정도 있는 것이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발탁하면 회무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대집 회장, 투쟁해도 협상 테이블은 유지” 당부
마무리단계 결선투표제·회원투표는 다음 기회에
이 의장은 오는 4월28일 개최되는 71대 의협 정기대의원총회에 다뤄질 주요 안건으로는 결선투표제를 꼽았다.
결선투표제는 회장 선거에서 과반의 표를 획득하지 못한 후보의 대표성 문제가 지적되자, 지난해 정총에서 도입하기로 의결된 바 있다.
이 의장은 “이번에 결선투표제 관련된 안건이 올라온다. 결선투표제를 1차 투표 1등부터 3등까지 할지 1등과 2등만 할지 이야기가 있지만 결선투표제의 의미대로라면 1등과 2등까지 하는 게 맞다”며 “여기에 결선투표 기간 동안은 탈락 후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1등의 표가 과반이 되지 않을 경우 2,3등이나 다른 후보가 합종연횡하는 일이 없도록 결선투표 기간 동안의 선거운동은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 2등과 3등을 한 후보가 연합해 1등을 잡는 제도가 아니다. 사표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다음 회장 선거 때 다시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한 번도 시행하지 않고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관심이 모아졌던 회원투표제는 이번 총회에서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쟁점이 많은 만큼 표결이 아닌 만장일치로 총회에 의견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이 의장은 “회원투표을 위한 정관개정은 민감한 면이 분명히 있다. 어떤 안건에 대해 회원투표를 하고 13만 회원들의 의견 반영이 어려워 대의원제를 운영하는데 회원투표와 대의원제 중 어느 것을 상위에 둬야 하는지 문제도 있다”며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토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번 총회에는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대의원들 중에서는 회원투표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의협 집행부는 생각이 있는 것 같지만 정관개정특별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회원투표제는 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지만, 그 대신 주요한 결정에 대해 회원들의 뜻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은 상정된다.
이 의장은 “회원투표제 도입은 정관개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의원 3분의 2 출석에 3분의 2가 동의해야 의결이 가능한데, 이번에 회원투표 기획이라는 내용의 안건이 이사회에서 통과돼 총회에 올라왔다”며 “이는 정관개정이 아니고 투쟁 시 회장이나 집행부 몇 명이 선동한 것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집행부가 회원들의 의견을 물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 의장은 “또한 상임이사와 상근이사를 늘리는 안건도 올라와 있는데 의협이 설명을 하면 대의원들이 분과에서 의견을 줄 것으로 본다”며 “상근이사와 상임이사 수의 증원은 정관 개정에 해당하므로 총회를 통과하고 보건복지부 승인이 있어야 최종 시행된다”고 말했다.
“의장 선거 공약대로 소통하는 대의원회 만들 것”
이철호 의장도 이번 대의원총회에서 임기 1년을 맞이 한다.
이 의장은 지난해 4월 22일 70차 의협 정총에서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홍경표 前 광주광역시의사회장에게 신승해 의장에 당선됐다.
이 의장은 지난 1년 간을 돌아보며 의장 선거 출마 시 공약한 사항을 지켜가고 있다고 평했다.
이 의장은 의장 선거 당시 공약으로 ▲대의원회 논의구조 개선 ▲회원들의 권익보호 ▲SNS를 활용한 비상연락체계 구축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의장은 “대의원들 간 소통을 하는 모바일 메신저 대화방을 만들어 의견 수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일부에서 과격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건전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평했다.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도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의장은 “대의원회 운영위가 매달 열린다. 현안에 대해 집행부의 회무 보고를 받고 각 직역이나 대한개원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표들이 참여해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며 “운영위원들끼리도 정보를 공유하면서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운영위는 대표성을 가진 의장들이 모여 논의하는 곳이다. 총회 의결에 반하는 결정은 할 수 없다”며 “집행부가 의결 사항을 따르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을 하지 월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