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승원 기자/수첩]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이 X-ray와 혈액검사기 등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천명했다.
혈액검사기의 경우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에 맞춰 필요하다는 논리이며, 엑스레이는 추나요법 급여화에 따라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혁용 회장은 “추나요법이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도록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며 한의사들의 엑스레이 사용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어 “하반기 중 법률적 다툼이 없는 10mA 이하 휴대용 엑스레이부터 진료에 활용하는 등 다각적 방법으로 행동에 나서겠다”고 구체적인 로드맵도 공개했다.
이 같은 선언에 의료계 반발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반발했다.
의협은 “한의사가 첩약 급여화를 위해 혈액검사를 시행하고 엑스레이를 사용하겠다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정당화하겠다는 망발”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한의협 최혁용 회장의 무지함도 지적했다.
한특위는 “한의협 회장이 언급한 10mA 이하 휴대용 엑스레이는 현장에서 사용되지 않고 있다”며 “방사선 발생 장치를 관리하고 있는 병의원 중 휴대용 엑스레이기기를 진단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기관은 0%”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의료기기를 둘러싼 의료계와 한의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에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대법원은 한의사가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를 이용해 성장판 검사를 한 것에 대해 무면허의료행위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특히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은 엄연히 면허권 밖 의료행위다. 이에 이번 한의협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선언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의료일원화를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양 측의 발전적 논의를 당부했다.
윤일규 의원은 “의료일원화가 안 된 나라가 몇 없다. 국내 보건의료체계도 이원화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대승적인 관점에서 일원화 권고를 해야 한다. 국민이 한의학과 의학 중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제도적으로 안전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의료일원화를 두고 갈등을 벌이기보다는 국민 건강이라는 대명제를 고려해 발전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도 “지난해 의료일원화 합의문 초안에서 기존 면허자에 대한 내용에는 이견이 있었지만 2030년까지 의료일원화 추진과 의료발전위원회 구성에는 다 동의했다”며 “이를 위해 의료발전위원회를 조만간 구성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한의협의 엑스레이와 혈액검사기 사용 선언은 국회 토론회가 개최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나온 것이다.
한의협 선언이 의료계에 미칠 파장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때문에 한의협이 이번 기자회견이 발전적 의료일원화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을리 없다.
결국 이번 한의협 선언은 의료일원화라는 큰 그림보다 당장 눈 앞의 진료권 확보만 생각한 행보인 셈이다.
당장 의협은 "의료일원화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의협은 “한의협이 의료일원화 논의에 참여한 의도가 불법적인 의과의료기기 사용과 혈액검사에 있음을 고백했으므로 더 이상 어떠한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혁용 회장은 의료일원화를 추진해야 한다면서 현대의료기기 사용 확대 선언을 했다. 이는 한의협이 그동안 필요성을 부르짖은 의료일원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심히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