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의료기관 이중개설 금지 위반을 이유로 내려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환수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누적되고 있다.
일각에서 의료기관 이중개설로 인한 환수처분은 재산권의 과도한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환수처분 외에 이중개설을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사실상 없어 논란이 될 전망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 12부는 건보공단이 정신건강의학과 A전문의를 대상으로 내린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A전문의는 2010년 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인천 소재 정신병원을 개설해 운영했는데, 경찰이 해당 병원을 수사한 결과 이중개설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됐다. 이에 건보공단은 수사 결과를 통보받은 후 지난 2018년 8월 A전문의에게 57억원에 달하는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A전문의는 이중개설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한 요양급여 환수처분은 위법·부당하다며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 재판장 홍순욱 판사는 “의료법 제4조 제2항 및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개설된 의료기관이라 하더라도 허가가 취소되거나 폐쇄명령이 내려진 것이 아니라면 보험급여비용을 받는 것 자체가 부당이득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의사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위의 사건이 이중개설로 인한 환수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말에도 서울행정법원은 여러 곳의 치과 지점을 설립해 요양급여를 청구한 모 치과의사에게 내려진 27억원 상당의 환수처분을 취소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어떤 의료기관이 요양급여를 실시할 의무를 부담한다면 공단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만일 어느 하나의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하나의 의무를 부정하게 된다면 이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취지에 어긋나게 되므로 각 의료기관들은 요양급여비용 수급자격이 인정된다"고 봤다.
2017년에도 법원은 선후배 의사가 함께 개설한 병원에 내려진 47억 가량의 환수처분을 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지급 받은 진료비란 실제로 치료를 받거나 입원을 하지 않았을 때 등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중개설의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단이 이중개설 자체만을 이유로 내린 환수처분은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서 인천 소재 정신병원 관련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고도 이용환 변호사는 “이중개설의 경우 요양급여 비용 보류 규정과 환수처분 규정이 없고,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에 따른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누적되고 있다”며 “법적 근거 없이 지속적으로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하는 것은 의료기관에 대한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이중개설 금지 위반을 이유로 한 의료급여 부당이득금 부과 처분에 대해서도 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판결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환수처분을 제외하고 이중개설된 의료기관을 처벌할 수 있는 다른 조항들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 A변호사는 “이중개설 의료기관의 경우 사무장병원과 달리 면허취소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없다. 3개월 자격정지 또는 의료법에 따른 형사처벌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환수처분이 없다면 병원 입장에서는 처벌을 받더라도 병원을 계속 운영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수처분 없는 이 같은 처벌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데일리메디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