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도네페질에 대한 임상 재평가 후 ‘혈관성 치매 증상 개선’에 대한 적응증 삭제를 공고했다.
이의제기 기간 및 최종 결정을 거쳐 적응증 삭제가 확정되면 7월경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혈관성 치매 증상 개선 치료제가 사라진다.
허가된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 검증을 위한 식약처의 주기적인 재평가는 존중하지만, 갑작스러운 이번 공고에 대해서는 국내 치매 치료현실을 다시 한 번 충분히 이해하고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네페질은 혈관성 치매환자의 증상 개선에 쓸 수 있는 유일한 약제다. 의료진과 환자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기존에 사용하던 약제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는 불안감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도네페질 재평가 결과의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혈관성 치매 환자 수 자체가 적을 뿐만 아니라, 혈관성 인자 조절과 뇌경색 재발을 막는 치료를 함으로써 혈관성 치매 악화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라는 관점 때문이다.
물론 옳은 주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해당 약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치료제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마치 당뇨병으로 인해 콩팥이 손상되어 투석이 필요한 사람에게, 투석은 하지 않고 당뇨병약만을 투약해서 혈당을 낮추면 다른 기관의 추가적인 손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혈관성치매로 인지기능이 저하돼 있는 환자에게는 뇌경색 예방도 필요하지만, 인지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는 치료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임상연구의 결과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 그러나 혈관성 치매의 임상연구는 문제점이 있다. 과거에 많은 혈관성 치매연구가 있었지만, 결과는 연구마다 상이했다.
그 이유는 생체표지자를 이용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알츠하이머형 치매와는 달리, 혈관성 치매는 아직까지도 분류와 진단 기준 등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상연구를 통해 혈관성 치매 증상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혈관성치매에서 도네페질의 임상적 효용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단지 임상연구 결과만을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국내의 진료 환경과 치매라는 질환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혈관성 치매는 서구권보다 아시아권에서 전체 치매환자의 비율이 더 높다고 보고돼 왔고, 우리나라 역시 다른 서양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혈관성 치매의 유병률이 높게 보고 되고 있다. 금번의 식약처 평가 결과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어 우려스럽다.
국가가 혈관성 치매 특수성, 환자와 의료진이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 등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고려해서 결정하기를, 치매 전문의로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