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수첩] ‘개천에서 용 난다’는 희망이었다. 어렵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많은 부모들은 자식교육에 아낌없이 희생했다.
사교육 지출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것은 ‘계층 상승’에 대한 대한민국 부모들의 열망과 헌신의 결과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희망에 의문부호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회·경제적 요인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늠자가 됐고, 최근에는 각종 부정까지 더해졌다.
특히 최근 드러난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의 연구부정 의혹, 즉 국가연구개발 관련 사업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등재했다는 ‘합리적 의심’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 최고의 지성인을 자부하는 명문 의대 교수들의 일탈행위, 그것도 국비가 투입된 연구를 자식의 대학입학 편법 특혜에 활용했다는 측면에서 윤리적 비판을 야기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임상교수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7명은 총 39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논문 8건에 미성년 자녀의 이름을 올렸다.
제목조차 생소한 논문에 자녀 이름을 올린 한 교수는 “공저자는 규정대로 넣었고, 실험에도 모두 다 참여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인정했다”고 해명했다.
전문지식을 요하는 의료 분야에서 미성년이 일정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와 관련, 교육부는 해당 논문들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보건복지부에 이에 대한 부정 여부 검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교수들 자녀가 모두 ‘뉴턴’은 아닐 것인데, 모든 자녀들이 뉴턴이라고 올라온 셈”이라며 “확실히 검증을 거쳐서 절차대로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복지부가 제시한 연구부정 여부를 가리는 절차에는 ‘9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 동안 대한민국이 배출한 뉴턴들이 대학 입학을 위해 혹은 취업을 위해 해당 논문을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해당 논문이 이들의 입학이나 취업에 기여한다 해도 이를 되돌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김남국 법률사무소 명현 변호사는 “해당 논문이 입학·취업 등에서 ‘필수조건’ 아니라 ‘가점요인’이라면 취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명확한 규정이 있는 곳에서 석사논문이 제출됐다면 명약관화한 문제가 되지만, 여기에 해당 하지 않을 경우에는 문제 삼기 어렵다는 것이다.
복지부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구부정 사안에 대한 검증은 부정이냐 아니냐를 밝히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라며 “의혹이 있으니 입학 등 행위를 중지하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는 대한민국의 뉴턴들로 인해 입학에서 혹은 취업에서 밀린 대다수 청소년들에게 부메랑돼서 고스란히 돌아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기존에 개천에서 용 나올 수 없게 한다는 사회·경제적인 요인보다 직접적이고 절망적이다. 부족한 사회·경제적인 요인 속에서도 노력을 통한 일말의 가능성마저 차단됐기 때문이다.
의혹을 받고 있는 교수들에 따르면 한국에는 수 많은 뉴턴이 있다. 그러나 뉴턴들이 개천 출신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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