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기자/
수첩] “원점에서 논의하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혁신의료기기 육성법 하위 법령을 논의 중인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혁신의료기기 육성법은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위해 처음 제정된 단독법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처음 논의를 개진하다 보니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미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도 IBM의 왓슨에 대항할 ‘닥터앤서’를 공개했음에도 ‘혁신의료기기’라는 정의 조차 명확히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이와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는 게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다.
해당 법률안은 재생의료 연구자 임상 활성화와 바이오의약품 신속 허가를 핵심으로 한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맞춤형 심사, 우선 심사, 조건부 허가 등을 가능하게 해 빠른 시장 진입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지난해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한 차례 좌절됐지만 올해 3월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갈등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파행되면서 발목이 잡혔다가 최근 겨우 법사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에서도 약 1조원 규모의 예산을 마련해 법안 구체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개중에서는 '제2의 인보사 사태' 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 무상의료운동본부와 의료민영화저지범국민운동본부 등은 첨단재생의료법 제정을 반대하며 “인보사 사태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바이오의약품 인허가 규제 완화를 추진하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기술개발·인허가·생산·시장 출시 전 과정을 산업계 이해관계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바이오산업 육성 계획은 의료민영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첨단재생의료법 현실화는 시기의 문제다. 이미 전 세계 유전자치료 시장은 8억 달러 규모로 형성돼 있고,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출시된 줄기세포 치료제 7개 중 4개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좋든 싫든 ‘바이오 대중화’가 이미 현실로 다가온 시점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허가 문제를 논하는 법률안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오의약품 분야 또한 다른 첨단산업과 마찬가지로 탁상공론이 길어진 틈을 타 외국 기업이 점유율을 높이거나 현실과 한참 뒤떨어진 논의를 진행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규제의 일방적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로부터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미국 의료시장도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기도 한다.
다만 산업 현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은 법 제정으로 ‘원점부터 논의’하는 시점이 계속 미뤄지는 측면이 우려된다.
올해 취임한 식품의약품안전처 강석연 바이오생약국장은 국내 바이오 전문기업들의 약진을 두고 “뜬다, 뜬다 하더니 뜨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업체들이 제대로 날개를 펼치기 위한, 혹은 더 엄격한 감시의 눈으로 허수(虛數)를 제거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공회전을 멈추고 업계와 환자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실무적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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