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가 1만명을 넘고 사망자도 200명 이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뉴스는 매일 매일 확진자와 사망자 발생 소식을 전하며 '우울한 감염병 시국'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우리나라 시민의식은 빛을 발했다. 지역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며 한때 500명을 넘었던 1일 확진자는 100명으로 줄더니 이번 주에는 5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방역당국의 최근 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93%가 '코로나19 사태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람직한 사회상으로 자리잡기 이전, 조금 더 기민하게 동참한 이들이 있다. 바로 의료기관 종사자들이다. 감염 전파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병원에서 일하면서 남다른 책임감과 함께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감염병 사태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병원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데일리메디 박민식·박성은 기자/기획 上] 최전방에서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은 누구보다도 감염 위험이 큰 만큼 병원 안팎에서 감염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병원 내에서는 회의와 컨퍼런스를 대면 형식으로 전면 변경하고 식사 시간과 방법까지 조절하고 있으며, 병원 밖에서는 일반 국민보다 훨씬 무거운 부담감을 지니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상황이다.
먼저 의료진 사이에서 이뤄지는 병원 내 컨퍼런스 및 회의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전면 취소·연기되거나 비대면 형식으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행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병원 내 컨퍼런스가 전부 취소되며 유튜브나 PPT 파일을 공유하는 식으로 한 달동안 진행 해왔지만 해당 방식으로는 교육이나 실질적인 논의가 쉽지 않아 다음 주부터는 컨퍼런스도 화상으로 진행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팀원 간 소통이 중요한 간호사들 역시 내부회의 및 모임을 모두 취소하거나 화상으로 진행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 서울대학교병원 간호본부장으로 재직했던 대한간호협회 조정숙 이사는 “병원 안에서 수간호사, 관리자들 회의를 모두 동영상으로 하고 있다. 카톡, 메일 등으로 회의 내용과 공문을 먼저 보내 내용을 인지하도록 한 후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면으로 하는 건 다 없앴다. 병원 외부 회의 참석, 사적 모임 참여 등 다 금하고 있다. 현재 간호협회에서 회의를 소집해도 간호사들은 참석 못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적인 회의 이외에 사적인 모임 참석 또한 의료인으로서 더욱 자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는 입장이다.
조정숙 이사는 “의료기관별로 사적인 모임을 제한한 지 오래됐다. 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을 내려둔 지 얼마 안 됐지만 현재 서울대병원도 방문 못하는 상황”이라며 “간호관리자들 사이에 친목모임이 많이 있었는데 다 취소됐다. 정해진 기한도 없으며 코로나19 진정 국면이 느껴지면서 국가 차원서 해제할 때까지 이 같은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구성심병원 이규민 간호부장은 “본인 과실이 단지 본인과 가족뿐만 아니라 원내 감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모임, 소회의, 교회 등 참여 자제를 철저히 하고 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원체 본인 건강 관리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등 병원에서 강력한 규칙을 세우기보다는 간호사 개인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서장이 인식하는 것과 신규 간호사가 인식하는 것 또한 하늘과 땅 차이다. 은평성모병원에 이어 의정부성모병원 원내 감염 소식이 다시 들려온 만큼 긴장을 놓지 않고 있으며 부서 내에서 매일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특히 중소병원에서 간호부가 차지하는 포지션은 다른 병원보다 크며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에 어깨가 무겁다”며 의료인으로서 코로나19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김용재 은평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출근 시간을 코로나19 이전보다 앞당겼다.
김 교수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는 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집 현관에 손 소독제를 비치해 놓고 퇴근 후 가족들과 접촉하기 전에는 반드시 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교수들은 코로나19 이후 가끔씩 즐기던 술은 물론이고 식사조차도 묵언수행처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용재 교수는 “주변에서도 혼술족이 됐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오랜만에 화상을 통해 교수들과 만날 때도 요즘 술자리가 없어 얼굴이 좋아졌다는 얘기들도 주고받곤 한다”고 말했다.
이준행 교수는 “병원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도 마주 보고 먹지 못하고 대화도 하지 않도록 해 마치 묵언 참선수행을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한 “원래 병원에서 바쁜 직원들을 위해 식사 대용으로 빵과 음료 등을 종이 봉투에 담아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다”며 “어차피 식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할 수 없으니 빵을 자기 방으로 들고 가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들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은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긴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환자들과 온라인을 통한 소통을 늘리거나 미뤄왔던 논문 작업에 착수하기도 한다.
서울성모병원 송교영 위장관외과 교수는 “원래 3~4월은 학술대회가 많아 가장 바쁜 시즌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이 됐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평소 환자들을 위해 직접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카페에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온라인을 통한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가지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긴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이준행 교수는 “나는 요즘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가다보니 코로나 이전보다 더 가정적인 아빠가 됐지만 집에 일찍 가면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며 “그런 분들 중에는 이전에 바빠서 하지 못했던 연구 데이터를 정리하며 논문을 쓰는 등 의미 있게 보내려고 하는 경우들도 많다”고 소개했다.
코로나 블루부터 사회 속 차별...의료진 노고 기억 부탁
이렇듯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은 의료진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극도의 긴장 속에 병원과 집만을 오가면서 소위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기도 하며 종종 주위 국민들이 감염을 우려해 거리를 두는 아쉬운 상황도 연출되곤 한다.
조정숙 대한간호협회 이사는 “소위 집, 병원, 집, 병원만 철저히 오가고 가족들과 외출도 못 하다 보니 소위 코로나 블루라며 우울함을 호소하는 의료진도 있다. 확실히 대형병원이나 중증환자를 보는 곳들은 지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신용카드 추적 등으로 확진자 동선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의료인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기고 코로나19에 감염될 시 책임은 어마어마해지기 때문에 심적 부담 또한 무시 못 할 상황이다.
이규민 청구성심병원 간호부장은 “제가 간호사인 줄 아는 단골 미용실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염려색을 비춘 바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간호사들로 인한 감염을 염려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이해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족들까지도 염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집에 가면 현관문에서부터 샤워실부터 곧장 달려가 샤워부터 한다. 보일러 버튼도 직접 누르지 않고 가족들에게 눌러달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조정숙 이사 또한 “감염병 상황에서 아직도 의료인에 대한 차별은 많지만 현재는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 메르스 때는 정말 심했는데 학교에서 엄마가 서울대병원 간호사라고 알려진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아이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서 상처받은 간호사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코로나19 초반에도 몇몇 사례가 들려왔지만 현재는 언론에서 의료진들의 수고와 기여를 강조하면서 공공연한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차별받는 상황을 염려하는 의료인은 아직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 이사는 “국가지정병원, 응급실 등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중에는 애들에게 자신이 어디서 근무하는지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대구·경북 자원 간호사들 중에서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가 언론 인터뷰로 알려지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밝혔다.
반대로 환자들의 응원이 의료진들에게 힘을 주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규민 간호본부장은 “환자들의 응원이 간호사들에게 힘을 주기도 한다. 물론 감염 지침을 지키지 않고 담배를 피러 나간다고 하는 등 간호사를 고생시키는 환자들도 있지만 간호사들에게 고생이 많다며 격려하는 환자들도 꽤 많이 늘었다. 이번 기회로 감염병에 대한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정숙 이사 또한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 때 가졌던 마음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으면서 의료진을 존중할 수 있으면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메르스때와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민들에게 의료진의 노고를 기억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용재 교수는 “사람 습관은 몇 달만에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의료진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걸릴 시 그 파급력이 엄청나게 큰데 의료진들도 보다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