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데스크 칼럼] 우연한 사건이 인류 역사를 바꾸는 경우가 적잖다. 베를린 장벽 붕괴가 동독 정치인의 결정적 말 실수에서 촉발된 것은 너무 유명한 에피소드다.
2011년 튀니지 야채행상 청년의 분신은 북아프리카 전역을 뒤덮은 ‘아랍의 봄’을 일으켰다. 한 개인에게 벌어진 사건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증폭돼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만들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일컫는 브렉시트(Brexit)는 ‘로더럼 사건’에서 비롯됐다. 잉글랜드 북부 도시 로더럼에서 파키스탄 이민자 조직이 백인 소녀를 1400명이나 성폭행한 사건이었다.
이 일은 영국민의 반(反)이민 정서에 기름을 부었고, EU 탈퇴론에 불을 지폈다. 로더럼 사건이 없었다면 브렉시트는 없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사소한 변화가 큰 사건으로 발전하는 현상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 한다. 1970년대 초 미국 기상학자 로렌츠가 대기(大氣) 운동을 시뮬레이션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초기의 조건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몰고 온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나비효과다.
최근 대학병원을 찾는 암환자들이 줄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선 병원들의 환자수 감소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병원 감염의 충격을 던졌던 메르스 학습효과가 컸다. 여기에 확진자 수가 1만 명에 육박하면서 다중이용시설 자체를 꺼리게 된 탓이다.
하지만 암환자 감소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동안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 암환자 비율은 줄지 않았다. 생사가 걸린 환자들 입장에서는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신종 감염병이 두려워 진료를 미루는 일반 환자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때문에 전체적인 환자수 감소 속에서도 암환자 비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이상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선 개원가와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신규 암환자 발생이 뚝 끊겨버렸다.
개원가 진료나 병원 건강검진을 통해 암이 발견되고, 이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을 찾는 통상적인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암 진단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건강검진이 올스톱 상황에 놓이면서 신규 암환자 발생 역시 멈춰버린 상황이다.
건강검진 수검자 1000명 중 4명이 암 진단을 받을 정도로 조기발견에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코로나19를 의식한 의료기관 기피 현상으로 전국 건강검진센터는 개점휴업 상태다.
전문가들은 작금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향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잠재적 암환자들이 조기발견 기회를 잃어 치료 가능한 병기를 훌쩍 넘기는 사례가 폭증하면서 사망률과 완치율 수치도 낙차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확진자 수가 둔화되면서 진화되는 양상이지만 해외는 폭증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이면서 일반인들의 심리적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초연결 시대 전염병에게 국경은 무의미하다. 때문에 국내 역시 코로나19 재창궐 위험이 여전히 상존한다. 결국 전염병 공포 속에 치료기회를 놓치는 암환자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정상적인 삶이었다면 자그마한 의심 증상으로 동네의원을 찾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에 암을 발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정상을 허락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중국 우한 시민의 기침 한 번이 이역만리 대한민국 암환자 삶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비효과의 핵심은 불확실성이다. 어떤 나비의 어떤 날갯짓이 어떤 경로로 파급돼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카오스(혼돈)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코로나19 창궐의 한 복판에서 우한기침의 그 몹쓸 위력이 암환자를 넘어 어디에까지 미치게 될지 혼돈과 불확실성에 치가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