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사 출신 내부고발자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의사 출신 강윤희 전(前) 임상심사위원이 이의경 식약처장을 비롯해 전·현직 고위직 공무원 12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주요 고발내용은 안전성 최신 보고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정기적 안전성보고서 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시판 중인 의약품에 대한 관리의무를 방기한 점, 엘러간사 인공유방보형물 제품의 희귀암 발병 위험성을 알고도 해당 의료기기 추적관리를 하지 않고 수년간 환자들에게 위험성을 알리지 않은 점 등이다
고발장 제출에 앞서 강 前 위원은 작년 7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련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식약처는 업무 지시 거부·업무 비밀 유출 등의 이유로 강윤희 심사관에게 3개월 정직처분을 내렸다. 그는 정직 처분이 끝나는 시기와 재계약 시점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계약 연장이 아닌 퇴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검찰 고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이 사건은 사화산이 아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식약처, 엘러간 유방 보형물 문제 알고도 방치”
도대체 식약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윤희 전 심사관은 환자와 국민 안전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문제들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지만, 식약처 내부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분개, 문제제기를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자신에게 이 같은 사건을 책임을 지도록 하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검찰에 고발했다는 게 강 전 심사관의 주장이다.
2019년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은 물론 의료기기까지 안전성 관련 이슈들이 속출했다. 세포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사건을 시작으로 다국적기업 앨러간의 유방 보형물 관련 이슈, 발암 유발 가능 의약품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강 전 심사관은 이중 희소암 발병으로 판매 중지된 앨러간의 유방 보형물과 관련된 조치를 미뤄온 식약처 대응을 직무 유기의 대표 사례로 꼽았다.
앨러간의 유방 보형물은 캐나다와 프랑스 식약 당국이 2019년 4~5월 판매를 중지시켰지만, 식약처는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제품 회수를 결정한 후에야 회수 조치에 들어갔다.
강 위원은 “식약처는 이미 2014년 12월부터 이 제품이 희소암 발생 위험이 있어 추적 조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회수 조치를 내린 후에야 환자 파악에 나섰다.
반면 해외 보건당국은 2011년경부터 유방 보형물 시술을 받은 사람을 추적 조사해왔다”고 지적했다. 식약처가 2014년 “추적조사를 하겠다”는 말만 해 놓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 측은 “관련법상 유방 보형물이 어느 의료기관에 공급됐는지 정도만 파악하겠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전문성 부족, 임기응변식 대응 문제”
그는 제약사들이 임상 중인 의약품이나 이미 판매 중인 의약품의 안전성에 대해 6개월마다 제출하는 보고서 등을 식약처가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것도 고발 이유로 꼽았다.
전문성과 업무 처리 속도가 제약사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더 큰 문제로 지적했다.
강 전 심사관은 “인보사 사태를 보면 리뷰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며 “발암가능물질이 원료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돼 판매 금지 조치가 된 위장약처럼 해외 규제기관(FDA)에서 문제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속조치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원인으로 전문가 부족을 꼽았다. 실제 국회 정춘숙 의원이 식약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 자격증이 있는 식약처 직원의 숫자는 20명에서 작년 14명으로 줄었다.
미국 FDA는 의사가 802명(치과의사 포함)에 이른다. FDA 직원이 식약처의 6배인 1만8000여명이라는 걸 감안해도 식약처 의사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제약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자문을 받아 대대적인 조직 개혁을 단행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700명의 의사를 채용하고, 중국 식약청(CFDA) 시스템도 전면 개편했다. 이후 중국 식약청은 규제기관으로서 국제경쟁력이 향상돼 지금은 한국을 앞서 나가고 있는 평가도 있다.
강 전 심사관은 “우리도 위기의식을 갖고 전문가 자문 및 육성에 나서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임기응변식 대책만 내놓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 검찰에 고발하게 됐다”고 했다.
식약처 “오해커서, 답답한 심경”
식약처는 강 전 심사관의 주장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데, 식약처를 무능한 기관으로 매도하고, 업무 관련 기밀을 누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사를 뽑기 싫어서 채용을 안 한 게 아니라, 식약처가 충북 오송에 있다보니 지원자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라며 “전문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계속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강 전 심사관이 피고발인으로 지목한 식약처 전·현직 고위직 공무원들이 차례로 검찰 조사를 받고선 자괴감을 토로했다”며 “식약처에 2년 정도 근무하고 모든 것을 안다는 식으로 내부 상황을 사실인 마냥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임상시험 심사가 신속하게 진행하고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전문의 임상심사위원’을 최대 25명까지 충원될 예정이다.
실제 식약처의 임상 승인 건수는 2004년 136건에서 2018년 649건으로 무려 377% 증가했다. R&D 주력 업체들이 늘면서 심사건수는 더 늘 것으로 예상되지만, 심사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의 연봉도 1억 2000만원까지 높이고, 업무도 신약 임상계획과 적응증 확대를 위한 새로운 임상 계획서만 심사토록 하고 있다”며 “공무원 조직이기에 정규직으로 편입시키면 급여를 1억원 이상 지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로 노력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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