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건강보험 재정 운영 효율성을 위한 의약품 공급체계 개선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두고 수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으나 해결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난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개최한 ‘의약품 공급 및 구매체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는 제네릭 의약품 품질 개선·약가 인하·신약개발 투자 확대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됐으나 참석자들 간 뚜렷한 합의점은 도출되지 않았다.
주제발표를 맡은 이상원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는 “의약품 공급 문제는 제네릭 과당경쟁 구조와 품질 불신, 정부 부처 간 괴리된 단절적 정책, 요원한 신약 강국, 요양기관의 우월적 지위 남용, 유통 난맥상 등 다양한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상원 교수는 “제네릭-유통-신약 공급이 상호 연계된 구조의 변화가 있으려면 정책 간 상호 영향 등을 분석해봤을 때 제네릭 품질기준을 강화하는 정책이 가장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즉, 불건전한 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약가 거품 축소가 필요하고, 약가 인하 정책을 위해서는 제네릭 품질 불신의 해소가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돼야 하는 정책은 제네릭 품질의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본적으로 선진국과 동일한 제네릭 품질 수준을 확보하고, 선진국의 평균적인 특허만료 후 시장가격 인하 패턴에 맞춰 가격을 인하해서 제네릭 사용량 확대를 하는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환자가 산업발전 위해 약 먹어야 하나”
하지만 토론자들은 이에 대해 난색을 표하며 각자 다른 우선순위를 지적하고 나섰다.
최상은 고려대 약학대학 교수는 “제네릭 품질강화를 위해서는 제네릭 허가 후 변경기준 강화, 우리나라 허가제도 운영전반의 체질 개선 등이 동반돼야 하는 과제가 있어 정책집행 순서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의 정책은 산업정책이 보건정책을 압도하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각 정책의 주체와 대상, 우선순위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혜경 의약품정책연구소장은 “제네릭관리, 유통구조, 신약개발 등 각 분야별로 연구가 되다 보니 개선안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접근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다만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현재의 상황에 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네릭의 품질, 가격, 다품목 모두 문제라고 지적이 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 모든 의약품이 처방되고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는 현실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 치료를 위해 쓰이는 의약품이 산업 정책을 중심에 두고 논의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양기 의협 의무이사는 “제네릭 의약품이 의약품 공급 및 구매 체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민양기 이사는 “의협의 기본 생각은 제네릭은 오리지날과 ‘품질이 유사한’ 의약품이지 ‘동일한’의약품은 아니다. 제네릭 품질 강화는 중요하지만 의약품 공급 및 구매체계 개선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제네릭 활성화 토론회 같은 느낌이 들어 유감이다”고 밝혔다.
이어 “제네릭을 쓸지 오리지날을 쓸지는 전적으로 처방하는 의사 책임이고 결과도 처방하는 의사가 지는 것”이라며 “약은 아프기 때문에, 낫기 위해 먹는 것이지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환자들이 약을 사는 것은 아니다. 산업이 환자 치료보다 앞서 있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신약개발을 먼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준수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정책위원회 전무는 “제네릭 약가인하와 사용확대 정책보다 더욱 우선해야 할 정책은 신약개발과 관련된 기술혁신 역량 지원 정책과 유통투명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전무는 “우리나라가 특별히 제네릭의 개수가 많고, 유통구조가 깨끗하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임상데이터들도는 차별화할 수 없는 다수의 제네렉에 의약품 시장이 경도돼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제네릭 사용량을 늘리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신약을 육성하는 정책을 우선하고 이에 글로벌제약기업들이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을 발굴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며 “만약 정부와 보험자가 현 틀 안에서 제네릭 사용량을 더 늘린다는 것은 현재 개발단계에 있는 후보물질이 출시되는 시점에 신약 출시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