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기자] 13만 의사의 대표단체, 대한의사협회의 위상이 심상찮다. 전문가 단체의 위상은 사라진지 오래고, 갈수록 심화되는 내홍은 회원들의 민심마저 돌려 세우고 있다. 국회와 정부도 의협의 몰락에 혀를 찬다. 그들에게 의협의 ‘위기론’과 ‘투쟁론’은 존재감을 인정해 달라는 투정에 불과하다. 100년이 넘는 숭고함의 역사가 무색한 요즘이다. 시대적 고난 속에서 의학을 들여왔고, 오늘날 세계가 우러르는 의료시스템 구축에 일익을 담당했던 의협의 모습은 종적을 감춘지 오래다. 특히 신종 감염병 코로나19 사태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전문가 단체는 방역정책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변방에서 울림 없는 메아리만 외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편집자주]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와 여당의 정책 결정에 완전히 배제되면서 의사 전문가 단체이자 의료계 종주단체로의 자존심이 큰 상처를 입어야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 되기 전인 금년 1월에는 질병관리본부가 주관하는 실무회의에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참석했다.
하지만 2월 이후부터는 정례적으로 이뤄지는 의약단체 회의만 몇 차례 열렸을 뿐 실무회의를 통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전무해졌다.
의협이 사태 초기부터 줄곧 주장했던 외국인 입국금지 요청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에게 의협의 주장은 전문가 단체가 아닌 정치색 짙은 이익집단의 정치공세로 치부됐다.
실제 의협은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부터 대구·경북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월 18일까지 총 6차례의 담화문을 통해 정부의 보다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효율적인 검역관리를 위해 감염 위험이 높은 국가 혹은 지역으로부터의 입국제한 또는 중단, 검역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최대집 회장의 우편향적 정치 성향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당시 야당도 입국금지를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의 ‘의협 패싱’은 곳곳에서 연출됐다. 2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코로나19 관련 수석보좌관회의에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의협을 대놓고 배제시켰다. 민주당은 4월 의사협회를 제외한 15개 보건의료단체협의회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정책협약식을 체결했다.
해당 협의회에서는 △의사 수 확대 △간호사 수급 불균형 해소 △보건의료인력 처우 개선 등의 중차대한 의료현안을 다루기로 했지만 정작 종주단체인 의협은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현안 쏟아지지만, 우왕좌왕 의협
‘의협 패싱’의 결과물은 혹독했다. 정책 논의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탓에 영문도 모른채 정부 발표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대응에 나서는 상황이 반복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비대면 진료’다. 정부는 지난 2월 23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시적인 전화진료를 허용했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이른바 ‘원격의료’는 불법이지만 감염병 사태에서 비대면 진료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부득이한 결정이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전화진료가 시작된 이후 3개월 동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접수된 전화진료 건수는 모두 32만6725건, 총 42억원이 넘는 진찰료가 청구됐다.
특히 복지부는 동네의원이 전화진료를 하면 ‘전화상담관리료’ 명목으로 진찰료의 30%를 더 주고, 야간이나 휴일엔 30%를 가산하겠다며 개원가의 참여를 독려했다.
의협은 코로나19로 운영이 어려워진 의료기관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이용해 이미 수 차례 우려를 표했던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려는 전략이라고 힐난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갑작스런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역시 의협을 당혹케 만들었다.
OECD 국가 중 최하위권 수준인 우리나라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20년 넘게 동결돼 있는 의과대학 정원을 최소 500명 이상 증원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논리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코로나19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원격진료란 비수를 꽂더니, 이제 의대정원 확대란 도끼질을 하고 있다”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용납 못한다”고 분노했다.
이 외에 코로나19 관련한 정책에서도 의협은 늘 뒷북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지난 3월 정부가 코로나19 예방 및 관리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을 예고했고, 의협은 부랴부랴 복지부장관 면담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거절 당했다.
뿐만 아니라 감염병 사태시 감염 취약계층에 의료기관 종사자를 포함시켜 달라고 의견을 제출했지만 이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결·단합도 모자란데, 집행부 불신·불만 비등
정부와의 엇박자 행보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협은 내부 균열 조짐까지 감지됐다. 집행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도화선은 최대집 회장과 집행부의 코로나19 의료자문단에 대한 비판이었다. 집행부는 “의학적 사실에 기대지 않고 정부에 듣기 좋은 말만 했다”며 일명 ‘권력 지향형 비선집단’으로 칭했다.
이에 의료자문단에 참여했던 한 감염내과 교수는 “허탈한 심정이다. 감염학 전문가로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자문했는데 정부의 비선실세 취급을 받으니 상당히 거북하다”고 토로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대한감염학회 등 의학단체로 구성됐던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는 해체됐다. 의협 주장에 따른 비선 논란 속에 참여 교수들의 보호를 위해 내린 조치였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회원들은 의협 집행부를 향해 강한 질타를 쏟아냈다. 힘을 모아야 하는 시점에 오히려 의사회원들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비난이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지방의료원에 재직 중인 한 의사회원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의 아집이 선을 넘었다”며 최대집 회장과 집행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해당 의사는 “의협은 멀쩡한 동료의사를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다”며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국가 자문에서까지 전문가들을 배제시키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어 “의사회원의 품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집행부는 모든 회무를 즉각 중단하라”며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이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대집 회장의 정치 편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여당이 추진하는 의료정책에 대립 일변도인 것은 결코 의료계에 득이 될 게 없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제21대 국회에서 180석을 차지하게 된 상황을 감안하면 그동안 의협의 정치 행보에 우려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대한의사협회 이철호 대의원회 의장은 “집행부가 총파업 등을 언급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며 “상대가 강할 때는 즉흥적으로 맞서 싸우기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대 정권과 계속 갈등을 빚는 것은 실리적 측면에서 손해”라며 “지금은 강경책보다는 긍정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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