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수첩] 의료계의 대정부 압박이 무뎌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잦은 압박용 발언은 ‘패싱’을 불러 왔고, 의도적 패싱은 ‘고립’을 초래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가장 처음 ‘투쟁’을 언급한 것은 지난 2018년 8월 16일이다. 개인 SNS를 통해서였다. 최대집 의협 집행부 탄생은 정부 정책에 반감으로 가득했던 의사 회원들의 갈증의 발로였다.
최대집 회장 역시 강력한 투쟁을 기치로 내걸며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불합리한 정책 저지'를 취임 일성으로 제시한 만큼 그의 '투쟁' 발언은 당연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잦았다. 횟수를 세기가 무의미할 정도로 '투쟁'이란 단어는 매 이슈마다 등장했고, 수단이 됐어야 할 투쟁은 최 회장을 떠올리는 ‘이미지’가 돼 버렸다.
이런 이미지에 보수라는 최 회장 개인의 ‘이념’이 더해져 그는 좀처럼 통(通)할 수 없는 ‘불통의 대명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정국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의협은 정부, 여당과 멀어져 갔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2월은 의료계 종주단체라는 의협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금년 2월24일 열린 범의학계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 의협은 초대받지 못했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긴급대책회의에도 의협회장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고립된 의협은 더 이상 대화 상대가 아니었다. 의협의 빈자리는 다른 단체에서 채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의협이 ‘4대 악(惡)’으로 규정한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의대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원격진료 추진으로 다가왔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최근 건정심 본회의를 통과했고, 의대 정원 확대 및 신설·공공의대 설립은 당정이 23일 대략적인 방향을 확정했으며, 원격진료 실증사업은 순항 중에 있다.
의료계 한 인사는 “그래도 예전에는 정부의 의료정책 논의 대상은 의협이었지만 지금은 확연하게 달라진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최근 의협은 회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총파업에 참여 의사를 가진 회원이 85%에 달한다”고 했으나, 이튿날 당정은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총파업을 구체적으로 언급한지 고작 ‘하루’ 만이다.
시위는 당겨졌다. 코로나19라는 중차대한 변수 앞에서 이번 총파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이번 파업에 전공의들과 예비의사인 의대생들까지 동참할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최 회장의 잦은 투쟁 발언이 정부와 여당에는 내성을 기르는 계기가 됐을까. 총파업 성사 여부와는 별개로 의협은 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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