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수첩] ‘의사 증원’ 논쟁이 뜨겁다. 최근 당정을 중심으로 매년 400명씩 총 4000명에 달하는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전체 의사 숫자를 늘려 의료 인프라 취약 지역, 공공의료기관, ‘비인기·기피’ 학과, 기초학문 분야 등 의료 인력이 부족한 곳에 투입하겠다는 게 정책 시행의 목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의 계기는 여러 차례 있어왔다. 서남의대 폐교 사태 이후 해당 정원 활용방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서울시가 공공의대 신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병원이 없는 지역 국회의원들도 의대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의 강력한 의지로 정책 시행이 눈앞에 다가온 현재 찬반 양측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대 신설이 확정된 전남 지역은 “최소 정원 10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포부를 밝혔고, 선정되지 못한 일부 지자체는 “일방적 의대 정원 발표에 유감”이라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사 수급 적정 차원에서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졸속 강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명백한 반대를 표명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국회 및 청와대 관계자와의 간담회 후에도 정책 수정 방침이 없다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가장 대립이 첨예한 부분은 ‘정책 효과’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정말 매년 전공의 부족에 허덕이는 ‘비인기과’의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을지, 취약지역 의료환경이 개선될 것인지, 기초의학 또는 의공학자 양성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벌써부터 의대 정원 확대 정책 효과가 나타나는 곳이 있다. 바로 입시시장이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이번 정책이 실현될 경우 한 해 증원되는 인원이 현재 의대 모집인원의 13% 수준이며, 전국 의대 평균 모집인원이 78명인 것을 고려하면 의대 5개를 더 새로 짓는 규모의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와 함께 내년부터는 약대가 학부 신입생 선발 방침을 밝혀 의·치·한의대를 비롯해 수의예과, 약대 등 의학계열 선발 규모가 현재 4800명에서 6800명으로 늘어난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연쇄효과가 전반적인 이과 선호 현상으로까지 번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계 학생들의 의예과 경쟁률은 늘 치열하다. 2020학년도 정시모집 당시 인하의대의 경우 25: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순천향의대(17:1)나 대구가톨릭의대(14:1) 등 두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하는 의대도 수두룩하다.
기초과학 연구 부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우수한 인재들은 모두 의대로 몰린다”고 말한다. 이공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대 쏠림 현상이 너무 뚜렷해 장기적인 연구 분야에서 활약할 만한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입시시장의 열기를 보면 다른 개선 효과는 장담할 수 없더라도 의대 선호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의 단편적인 방침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의대 쏠림’ 현상에 따른 입시 경쟁 완화는 어렵게 됐다.
정책적 의사 증원이 효과가 있으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복잡한 의료체계 안에서도 큰 부작용 없이 작동할 수 있다. 실제 당장 걱정했던 부작용이 발견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정책의 전면적 수정을 요구하며 8월7일 파업을 천명한 것이다. 당초 필수의료인력으로 빠지지 않고자 했던 응급실과 중환자실 전공의들까지 파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상치 않은 국면이 발발할 수 있는 형국이다. 의대생 증원을 통한 의료체계 개선도 좋지만 정부가 한 번 더 의료계와 젊은의사들의 우려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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