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법
(法)’이라는 것은 한 번 제정되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강제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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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그 법이 담고 있는 내용이 아주 보편타당해야 하며, 윤리적이어야 하고, 사회의 발전 지향적이어야 한다.
아울러 법을 제정하는 과정이 지극히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평범한 민주시민이라면 가질 수 있는 법에 대한 상식일 것이다.
"국가 미래 중요 사안을 전문가들과 전혀 논의 없이 몰아부쳐"
자유민주주의는 인간 존엄성 실현을 위해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며 권력 분리와 견제를 지향하고 법치주의 원칙에 의한 의사를 결정하는 사회적인 제도다.
고대 중국 왕정의 정치체제는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맹자가 주장한 왕도정치(王道政治)와 한비자의 법가에 바탕을 둔 패도정치(覇道政治)가 대표적이다.
전자는 인(仁)과 덕(德)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철학이다. 조선시대에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인물은 정암(靜庵) 조광조이며 그의 도학정치(道學政治)도 이와 같은 부류라 할 수 있다.
후자는 법을 바탕으로 무력이나 강압과 같은 물리적 강제력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철학이다. 공권력에 의한 공안정치, 권모술수로 국민을 억누르는 결과지상주의다. 패도정치는 나쁜 사회와 독재자의 전형이다.
역사상 처음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라고 지칭되는 진나라 첫 황제인 진시황은 철저하게 법가의 철학을 바탕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했다.
그리고 개혁을 통해 많은 업적을 이뤘다. 그러나 통일국가의 건국 이후 불과 15년 만에 멸망하고 유방(劉邦)의 한나라가 통일 중국의 주인이 됐다.
중국을 통일한 뒤 군사력이나 사회제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국력이 막강했던 진나라가 짧은 수명을 끝으로 멸망한 원인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망국의 원인을 적시하면 첫째 만리장성의 축성이나 아방궁의 건축을 통한 백성들의 과도한 노역이 망국의 시발점이었다.
둘째는 분서갱유(焚書坑儒 : 유학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산채로 땅에 파묻어 죽인 만행)와 같은 사상과 철학의 탄압이 망국을 재촉했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법에 의존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통한 법률 지상주의가 멸망에 이르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외형적으로는 법가적인 정치 철학에 따라 강력한 법치를 했으나 이 시대의 법은 권력자 의도대로 제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패도정치의 마지막 암수(暗數)라고 할 수 있는 무도한 독재정치로 흘러갔던 것이다.
기원전 206년에 망한 진나라 이야기, 즉 정확히 2026년 전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왜 끄집어내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의사 증원 여부는 반드시 사회적 여건 등 고려, 종합적이고 통계적 분석 기반해서 추진돼야"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 철학과 행태는 수 천년이 흘렀지만 쉽게 변하는 게 아닌 성 싶다. 변형된 법치주의 횡포는 반드시 독재를 낳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국회)의 다수가 정제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법을 제정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 법도 국민들에게 복종을 강요할 것이다. 법 제정 과정에 있어 불법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부의된 법안에 대해 국회에서 절대 다수의 전폭적인 찬성을 통해 제정됐기 때문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즉, 형식적 법치주의라는 관점에서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을 제정할 권한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본인들 입맛에 맞는 법을 마음대로 제정하고 이 법을 통치 수단으로 삼는 것이야 말로 패도정치가 독재정권을 잉태하는 과정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는 의회를 장악한 다수의 횡포나 대중을 선동해 등장한 독재자의 전횡을 견제 할 수 없다.
오히려 통치 원리로서의 법치주의가 권력자의 통치권을 강화하는 데 일조를 하는 역기능을 낳는다는 사실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거 때만 되면 각 지역에 의과대학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도 전국적으로 여기저기 한 두 곳이 아니다. 공약이 담고 있는 허구성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지면 낭비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의사 증원여부는 반드시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여러 환경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고, 다양한 객관적 연구를 통해 추계해야 한다.
"유능한 의사, 쉽게 양성되지 않아 10년 이상 장기간 의학교육 뒷받침 절실"
의료 선진국에서는 의사 부족은 물론 의사 과잉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의과대학 신설은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유능한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의학교육적인 철학이 전제돼야 한다.
아울러 미래 의료강국 대한민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의학의 학문적 발전이라는 대명제를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의사를 만들기 위한 10년 이상 장기간의 의학교육을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곳이 의과대학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한 사람의 의과대학생을 전문의로 양성하기까지 현재의 가치로 8억6000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한 나라다.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의학교육비가 들어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도 안 된다.
이번 국회에서 의과대학 신설을 전제로 한 의사증원 안(案)이 절대 다수인 여당 단독으로 전격 통과됐다.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일도 없고, 제대로 된 공청회도 없이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법을 제정했다.
제대로 된 의학교육 과정을 통해 우수한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그 어떤 일도 논의된 적이 없었으며 의학교육의 특수성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경솔하고 무지한 처사이기에 울분을 토한다.
국회에서는 의과대학 설립을 동내 보습학원 설립하듯 단순하고 경솔하게 치부되고 있다.
국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중차대한 문제가 선출된 권력이라는 위력을 등에 업고 국회의원 말 한 마디로 결정되는 일이 횡행하는 나라는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불행한 일이다. 국민들은 눈이 멀고 귀가 먹은 사람들이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어떤 근거도 없이 의사부족이라는 논리가 정치적 견해만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 신설과 의사 증원 법이 집권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의 단독 야합을 통해 탄생됐다.
이 법은 형식적 법치주의를 통해 태어난 패도정치(覇道政治)의 사생아다. 다시 말해 정당한 법치주의 산물이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의 독재적 수단 표출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으로 태어 난지 얼마 안됐다고 하더라도 즉각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