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전공의와 전임의가 본격적인 파업에 돌입한 8월23일 일요일. 서울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 A씨의 당직 스케쥴은 빡빡하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이튿날 8시까지 꼬박 밤을 새며 응급실 당직을 선 후 곧바로 월요일 오전 외래진료를 보러 가야 한다. 저녁에 피곤한 눈을 붙이는 것도 잠시, 화요일에도 오전 외래진료 후 밤샘 병동당직이 예정돼 있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B교수 스케쥴도 만만찮다. 월요일 오후 외래진료 일정을 마친 뒤 만 하루 동안 응급실 주간·야간당직에 투입된다. 30시간 가까이 한숨도 못자는 연속근무에 체력이 버텨줄지 걱정된다. 예약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외래진료 때 지장이 없어야 하는데 몸 컨디션에 문제가 없을지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충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와 전임의가 집단휴진에 나선 24일 일선 대학병원 교수들은 "곧 한계상황에 봉착할 것"이라며 "정부는 서둘러 올바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 21일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 22일 3년차 레지던트에 이어 23일 1년차와 2년차 레지던트까지 파업에 참여해 사실상 모든 전공의가 업무현장을 떠난 상황이다.
대한전임의협의회 역시 오늘(24일)부터 전공의들과 함께 파업에 동참키로 했다.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는 전체 의사 인력의 3분의 1수준이며 전임의를 더하면 절반 가까이 된다.
주요 대형병원은 의료공백에 대비하기 위해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교수들을 당직에 투입했다. 인턴과 레지던트 4년차가 현장을 떠난 지난 주 이 같은 조치로 의료현장에 큰 혼란은 없었다.
실제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한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야간 당직을 짜는데 부탁도 하기 전에 교수들이 이름을 적었다. 힘들긴 하지만 진료는 순조롭다. 전공의들은 병원 생각말고 투쟁하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만일 파업이 기약없이 장기화된다면 상황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일선 의료진은 입을 모았다.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과장급 교수는 “가장 고참인 교수까지 당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번 주에는 60대 교수가 오전·오후 종일 외래 후 밤새 응급실 당직에 나서는데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걱정된다”고 말했다.
현행 전공의법은 과로를 방지하기 위해 36시간 초과근무를 금지한다. 많은 교수들이 기꺼이 당직에 나서고 있지만, 고령의 교수들 경우 이에 준하는 근무강도를 장기간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다.
특히 피곤한 상태에서 진료를 보면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고민이 더욱 깊다는 게 교수들의 얘기다.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현재 조교수까지 당직을 서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든 인원을 배치해야 할 것”이라며 “당직과 외래가 연이어 잡히는 상황이 계속되면 최상의 컨디션으로 환자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또 인력 부족으로 전체 수술과 외래를 줄이는 상황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예정된 수술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인력이 줄었는데 1인 당 수술건수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올바른 판단에 기반한 정상화가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주요 병원들은 파업 이후 외래·수술·입원 규모를 축소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미 외래 진료와 입원 예약을 줄였으며, 삼성서울병원은 급하지 않은 외과 수술을 연기하고 신규입원을 중단했다.
서울대병원도 수술 예약 접수 시 전공의 파업일인 7일, 14일, 21일을 제외하고 스케줄을 잡았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도 대비책을 준비 중이다.
한편, 전공의·전임의 파업으로 의료공백이 코앞에 닥치자 지난 22일 정부는 의대정책 추진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끝내 파업을 강행할 경우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보류가 아닌 철회, 완전중단 전까지는 파업을 중단하지 않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이와 관련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며 "전공의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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