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수첩] 의과대학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치 등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의료계가 전면적인 단체행동에 나선 가운데 일부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신설·공공의대 설립이 가시권에 들어서면서 벌써부터 물밑 여론몰이에 나서는 모습이다. 의료계와 정부가 조율점을 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의견을 호도하며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남원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하는 ‘의대 정원 확대 및 신설·공공의대 설립’ 관련 설문조사와 관련해 직원들에게 조사에 응한 뒤 답변내용을 공유하라고 권유했다.
‘시장님 지시사항’이라는 내부문건까지 전달하며 “각 실과 소속 전 직원 필히 설문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8월 19일까지 회신하라”며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사실상 긍정 투표를 강요한 셈이다.
김영록 전남도지사 역시 최근 각 시군 유관기관에 공문을 보내 공무원들이 권익위원회 설문조사에 응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권익위 설문 결과가 우리 도(道) 핵심과제인 의과대학 설립 추진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지인들 참여에 적극 협조해 달라”며 도에 유리한 답변을 해줄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목포시도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목포시청은 최근 내부 통신망을 통해 “30여년 간 숙원사업인 목포의대 유치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며 목포의대 유치 관련 국민청원 인터넷 주소를 지인에게 홍보할 것을 종용했다.
전북과 전남은 이번 의대 유치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곳이다. 전북 남원은 지난 2018년 서남의대가 폐교하면서 의대를 잃었다. 서남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세우는 게 남원시의 계획이다.
목포와 순천이 유치 경쟁에 나선 전남은 전국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다. 목포시는 앞서 '국립목포대 의과대학 및 대학병원 설립'을 촉구하는 성명과 함께 서명운동을 실시했고, 순천시도 TF를 운영 중이다.
의과대학 유치 열기가 뜨거운 두 지역의 홍보 및 선전활동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책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지자체 행보가 향후 국민여론 수렴 과정에서 신뢰성을 깎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권익위 설문조사나 청와대 청원과 관련해 지자체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사들은 “앞으로 정부가 들고 나오는 ‘국민여론’을 믿을 수 없다”, “정책 자체가 지자체 이득싸움에 불과했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정부와 의료계 갈등은 사전에 양측 간 충분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촉발됐다. 의사들이 강경행동에 나서고 의료마비가 목전에 다가오면서 이제야 정부가 ‘정책 추진 보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앞으로 의료계와 정부의 갈 길은 멀다. 양측 모두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나름의 논리와 입장이 있다. 이 첨예한 대립 사안을 하나씩 해소해야 하는 과정에서 국민 여론은 중요한 참고사항 돼야 한다. 여론 몰이를 시도한 지자체의 섣부른 행보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