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수첩] 전공의들이 주축이 된 젊은의사들의 대정부 투쟁이 자칫 허무한 방식으로 막을 내릴지 모르게 됐다. 모든 것을 걸고 투쟁 선봉에 섰던 이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협상장에 없었다.
소통 부재가 문제로 보인다.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으로 촉발됐던 의-정 갈등은 의협과 정부∙여당 간 합의로 표면적으로는 봉합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료계 내부의 불통은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젊은의사들은 의협이 정부∙여당과 합의 과정에 절차 상 문제가 있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초 의결됐던 것 처럼 최종 합의안에 대한 회람 등도 없이 최대집 의협회장이 독단적으로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철회’라는 단어의 합의안 포함 여부가 가장 쟁점이 됐다. 대전협 비대위는 "지난 3일 범투위 회의후 의협측 범투위 위원들과 공동으로 마련한 합의안에는 '정책 철회'가 명문화 돼 있었으나 4일 의협과 정부∙여당이 서명한 합의안에는 철회라는 단어가 빠져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젊은의사들이 분노하는 배경은 ‘철회’라는 단어 하나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의협 조승국 이사와 범투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애초 3일 있었던 범투위 회의에서 의결된 안에는 ‘철회’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부∙여당과 협상을 위한 최종안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젊은의사들 의견이 추가 반영돼 철회가 포함됐었다는 것이다.
젊은의사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부분은 협상과정에서 의료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빼앗겼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범의료계가 정부 4대 의료정책 추진에 분노했던 이유가 정책 자체 뿐 아니라 진행 과정에서 의료계와의 소통 부재이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 대전협 비대위 임원들은 이날 새벽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안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정부∙여당과의 합의 소식도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됐다는 전언이다. 젊은의사들이 환자 곁을 비우면서까지 힘들게 얻은 협상의 기회는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졌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전협 서연주 부회장은 4일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새벽 4시경 의협을 통해 민주당의 협의안을 받았다"며 "처음에 젊은의사 비대위가 제시했던 의료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안건들이 누락돼 있고 문장도 왜곡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재협상과 합의안 수정 등을 요구했으나 결국 무시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의협은 몇 시간 뒤 여당, 복지부와의 합의문에 연달아 서명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 같은 의협 행보가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정부 투쟁을 이끌어온 주역이 젊은 의사들이었던 만큼 최종 합의 전에는 그들 의견을 수렴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전권이 최대집 회장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 결정 전에는 의료계 어른으로서 후배와 제자들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들었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서울아산병원 교수들과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교수들도 최대집 회장의 독단적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젊은의사들은 이제 진료현장으로 복귀하고 추후 합의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주장하는 분위기도 적잖다. 그렇지만 대전협 분위기는 아직까지 비분강개한 정서가 우세해 보인다.
서연주 부회장은 4일 저녁 자신의 SNS를 통해 “아직 비대위 지침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젊은 후배들이 목숨 내놓고 지키고자 했던 의료계 미래를, 마치 자기 것인양 바꿔치기 했던 분들에게 반드시, 반드시 합당한 책임을 물을 거란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요구했던 ‘근본적 해결안’ 들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하는 의지도 곁들였다.
어쨌든 의료계와 정부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앞으로 여정이 결코 녹록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또 다시 파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젊은의사들의 투쟁 역시 중단이 아닌 진행형이다. 7일 파업 지속여부를 결정짓는 대전협 회의가 그 분수령이 될 것이다.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의료계와 정부는 물론 전국민적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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