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수첩] 독감백신 문제로 온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9월22일부터 예정돼 있던 독감 무료 예방접종이 백신 상온 노출로 전면 중단된 탓이다.
초유의 독감백신 무료접종 중단 사태를 놓고 경험이 전무한 유통사가 독감 백신 조달을 맡게 된 점과 함께 운송 하청을 맡은 백신 전문 물류업체의 관리 부실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부도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입찰 과정에서 정부가 과도하게 낮은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독감백신 접종시기를 예년에 비해 한 달가량 앞당겼지만 정작 유통업체 선정은 지난해보다 한 달이나 늦어졌다. 정부가 ‘원가’도 안 되는 낮은 가격을 고수하면서 입찰이 네 차례나 유찰됐기 때문이다.
촉박해진 일정 탓에 업체는 냉장유통(콜드체인)을 준비할만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는 고스란히 독감백신 무료접종 중단에 따른 국민들 피해로 이어졌다.
사실 의료계에서는 ‘원가 이하’ 가격 책정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저수가는 의료계를 괴롭혀온 고질적 문제다.
8월 범의료계 총파업의 주요 이유 중 하나도 수가 현실화라는 근본적 대책이 빠져있는 정부의 일방적 의료정책 추진이었다.
환자를 치료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병원들은 비급여 진료로 내몰렸지만 국민들로부터 되레 ‘과잉 진료’라는 부정적인 시선만 얻었다.
해당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젊은 의사들은 건정심 구조의 개편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의협과 당정간 합의문에선 제외되고 말았다.
물론 국가를 운영하면서 적재적소에 한정된 예산을 사용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의 소중한 혈세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딘가에서는 분명 아쉬운 소리가 나오게 된다.
하지만 국민 건강과 생명 수호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 가치가 있을까. 하물며 지금은 인류 역사에 남을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독감유행으로 인한 트윈데믹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며 ‘원가 이하’를 고수했던 정부도 대승적 차원에서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가야할 시점이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적절한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독감백신 접종 중단 사태는 언젠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가 또 다시 국민 건강과 생명을 덫 위에 올려놓는 우(愚)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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