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임수민 기자] 2020년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도 역시나 한국 의학자 및 과학자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벨화학상 후보에 서울대학교 화학과 현택환 석좌교수가 후보로 꼽혔지만 최종 수상자에는 빠져 아쉬움을 더했다.
국내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의료계 인사들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노벨위원회는 지난 5일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하비 알터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과 마이클 호튼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 찰스 라이스 미국 록펠러대 교수를 선정했다.
이들은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함으로써 혈액으로 퍼지던 바이러스성 간염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점이 선정 이유로 꼽혔다.
미국 국립보건원 선임연구원 하비 올터 박사는 만성 간염에 걸린 침팬지 연구를 통해 이들의 증상이 A형간염과 다른 바이러스 질환이 원인이었음을 밝혀냈다.
캐나다 앨버타대 마이클 호턴 교수는 감염된 침팬지의 혈액과 환자 혈청에서 나중에 'C형간염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은 양성 클론의 존재를 처음으로 규명했다.
미국 록펠러대 찰스 라이스 교수는 C형간염 바이러스의 내부 단백질 구조와 수혈을 통해 C형간염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C형간염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2015년부터 2~6개월 간의 경구약 복용으로 완치가 가능해졌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최종기 교수는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HIV),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불리는 4대 감염 질환 중 하나에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속하기 때문에 그 의의가 크다”고 평했다.
이어 “이들의 C형 간염 바이러스 규명으로 현재 95% 이상의 C형 간염 바이러스 환자가 치료 가능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간경변증의 10%, 간암의 20% 정도가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다행히 2015년 이후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완치 가능한 경구 항바이러스제가 나와 있는 상황이다.
“한국, 기초연구 인프라 확충 단계…10~20년 뒤 기대”
노벨생리의학상은 1901년 이후 지금까지 총 111차례에 걸쳐 222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자의 국적을 살펴보면 미국이 104명으로 독보적인 강세를 보였고 영국이 30명, 독일 16명, 프랑스 11명, 스웨덴 8명이다.
스위스·호주(6명), 덴마크(5명), 오스트리아(4명), 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각 3명) 등 국가도 간간히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을 알렸다.
한국은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모든 분야에서 무관이었다.
코로나19로 다른 해보다 과학 분야 수상자에 관심이 높았던 가운데 나노결정(Nano Crystals) 합성 연구를 진행한 서울대 현택환 석좌교수가 노벨화학상 부문 후보로 꼽히며 관심이 집중됐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의료 연구자들은 국내에서 노벨상이 배출되지 않는 이유로 기초연구에 대한 인프라 미비를 지적하며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기초연구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이 높아져 미래에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대한의학회 김성윤 기초의학이사는 “노벨생리의학상에 강국인 나라들을 보면 전통적인 과학 강국이었거나 일본처럼 꾸준히 기초연구에 예산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NIH(미국국립보건원) 1년 예산이 35~30조 정도 되는데 국가가 기초의학 연구개발에 어느 정도 투자하느냐가 노벨상을 좌우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연구비가 제대로 투자되기 시작해 이제 20년 정도 지났다”며 “혁신 분야에서 연구결과가 나오고 치료까지 적용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평했다.
이어 “현재 국내 기초과학 예산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투자가 늘었다”며 “기초과학 연구 투자가 꾸준히 이어지면 국내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조영욱 학술이사 또한 국내에서 노벨상이 배출되지 않는 이유로 기초연구에 대한 인프라 미비를 지적했다.
그는 “노벨상은 오랜기간 꾸준히 기초연구에 매진해야 수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기초연구는 응용연구와 달리 연구비 투자나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고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연구비 투자가 적다보니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교수진 또한 노벨상 강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노벨상을 위해 실패확률이 높은 기초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우선 조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아직 부족하지만 정부 또한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카이스트(KAIST) 등 국가연구원과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연구비 지원을 확대하는 등 움직임이 있다”며 “10~20년 뒤에는 기대해볼만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