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00명씩 10년 간 4000명. 갑작스런 의과대학 정원 확대 소식에 의료계는 동요했다. 세대와 직역을 막론하고 정부 방침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 사태에 목도한 공공의료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정책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분위기는 심상찮게 돌아갔다. 특히 젊은의사들이 공분했다. 급기야 이들은 거리로 나왔고, 최후의 보루인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전공의와 의대생 수 천명이 지난 8월 7일 여의도에 운집했다. 정부의 일방적 의료정책 추진에 반대하는 젊은의사들의 외침은 의료계 전체로 번졌다.
선배의사들도 속속 동참을 선언했다. 개원의는 물론 전임의들까지 투쟁 대열에 합류했다. 스승인 의대교수들은 진료공백을 메우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동안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한 투쟁은 간헐적으로 이뤄졌지만 전 세대와 직역을 망라한 동시다발적 봉기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투쟁 이후 20년 만이었다.
의료계 투쟁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던 정부와 여당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설득에 나섰다. 국무총리도 성난 의심(醫心)을 어루만졌다.
극으로 치닫던 상황은 지난 9월 4일 대한의사협회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합의문 서명을 끝으로 종결되는 듯 보였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전면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 하기로 한 만큼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백기투항을 한 셈이다.
또한 전공의와 전임의 대상으로 제기했던 형사 고발을 철회하고 총파업 투쟁 행위에 대한 일체의 피해가 없도록 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바로 이 시점부터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졌다. 대정부 투쟁의 구심점이었던 의료계 주요 단체들의 리더십이 사퇴와 탄핵 등으로 휘청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를 시작으로 대한의사협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등이 내홍에 휩싸이며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이번 투쟁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대한전공의협의회 박지현 회장은 파업 유보 결정 과정에서 회원들과의 소통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도 탄핵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당정과 합의문 서명 과정에서 젊은의사들 의견을 무시했다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탄핵 위기에 몰렸다.
대의원회 불신임안 부결로 탄핵은 면했지만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향후 회무 운영에 적잖은 어려움을 예고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조승현 회장 역시 회원들의 원성을 샀다. 의대생 1485명은 조 회장과 집행부 파면을 골자로 한 탄핵안 발의를 요청했고,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다.
결국 승전보의 기쁨을 누릴 여유도, 결과물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내릴 틈도 없이 내홍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연출하고 말았다.
회장 탄핵 논의가 잦은 대한의사협회야 그렇다 치더라도 미래 의료계를 이끌 젊은의사들 마저도 중대 고비에서 내홍을 겪는 모습에 혀를 차는 의사들이 많았다.
한 노(老) 교수는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부끄러운 단상이 후배들에게까지 전이된 듯 하다”며 “뭉쳐도 부족할 상황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개탄스럽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의료단체들이 저마다 투쟁의 상흔에 허덕이는 사이 국시거부에 나섰던 의대생들은 무적자(無籍者)가 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구제불가’로 일관 중이다. 매서운 여론을 이유로 꼽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이 나서 의대생 구하기에 애를 쓰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구제 받지 못할 경우 진료현장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단순히 1년 공백에 그치지 않는다.
인턴이 채워지지 않은 1년은 레지던트 1년 차의 공백을 야기하고, 이러한 악순환은 5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의료체계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지금이야 말로 의료계가 결연하게 나서야 할 때이지만 이미 내홍으로 만신창이가 된 단체들은 투쟁의 동력마저 상실한 모습이다.
20년 만의 봉기. 그 투쟁의 선봉장은 있었지만 그 씁쓸한 결말을 매듭지을 책임자는 없었다. 이게 바로 작금의 의료계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