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백성주 기자] 제대로 된 진료지침이 없어 해외보다 낮은 생존율을 보이는 ‘폐동맥 고혈압’의 국내 첫 가이드라인이 마련된다.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이를 근거로 그동안 중등도 이상 위급한 환자에 대한 병용치료 요법을 통한 적극적 치료의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또 치료에 있어 까다로운 보험체계 개선도 기대된다.
폐고혈압 진료지침 제정 특별위원회는 28일 오후 서울스퀘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진료지침을 공개했다. 해당 지침은 현재 12개 유관 기관의 검토 및 동의를 받고 있는 상태다.
폐동맥 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치명적 질환이다. 점차 폐혈관 저항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우심실 후부하가 커져 우심실 부전과 조기 사망이 발생하게 된다.
장혁재 교수(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적용기준이 중증도에 맞춰져 있어 조기에 적극적인 약물병용이 어렵다. 치료 가이드라인인 표준 진료지침이 없어 적극적인 치료가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나은 치료 환경을 마련하고자 ‘한국형 폐동맥 고혈압 진료지침’을 제정하고 적극적인 치료의 장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박재형 교수(충남대병원 심장내과)는 “유럽에 비해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 5년 생존율은 낮다. 일본의 경우에도 5년 생존율이 74%인 반면 우리나라는 46%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 고혈압 치료처럼 병합치료를 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연구가 입증됐음에도 불구 국내에서는 병합치료 비율이 16%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는 증상이나 진단, 검사 소견 등의 국내 보험기준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병용 처방을 해도 삭감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지침에선 단순화된 지표를 통한 포괄적인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위험도 평가가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환자 개인별 위험도 수준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평가를 통해 치료 전략을 결정할 것을 권고했다.
또 국제적으로 인정된 치료방법을 국내 보험체계에 반영하기 위한 지침도 제시됐다. 초기 치료부터 2제 병용요법을 고려해야 하며, 초기 2제 치료 3~6개월 이후, 환자가 저위험 상태에 도달하지 않으면 추가 병용요법을 실시해야 한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 3년 평균 생존율 54.3% 불과, 개선 시급”
우심도자술로 측정한 평균 폐동맥압이 25mmHg 이상, 폐동맥 쐐기압이 15mmHg 이하이면서 폐혈관 저항이 3WU(Wood Unit)을 초과하는 경우 폐동맥 고혈압으로 정의된다.
폐동맥 고혈압의 발생률은 레지스트리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보통 인구 100만 명당 2~10명이며, 유병률은 인구 100만 명당 15~60명 정도로 보고된다.
현재 국내에서 치료 중인 환자는 약 1500명으로 약 2~3%로 추정되는 환자수 대비 약 30%만 진단 및 치료를 진행 중이다. 조기진단의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한 숨겨진 폐동맥 고혈압 환자는 약 4500~6000명으로 추정된다.
폐동맥 고혈압의 대표적인 증상은 호흡곤란 또는 숨 가쁨으로 계단을 오르거나 운동을 하는 등 신체활동 시 빈번하게 나타난다. 만성피로감, 무력감, 전흉부통, 실신과 함께 우심실 부전에 의한 말초부종과 복수가 발생할 수 있다.
손, 발가락이 추위에 쉽게 차가워지고 파랗게 변색되는 레이노드 현상이 올 수 있다. 처음에는 천식이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영향으로 오진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아 호흡곤란이 발생하고도 평균 2.5년이 지난 후에야 진단을 받는다.
폐동맥 고혈압 전문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인 1970년대에는 특발성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경우 예후가 매우 나빠 평균 생존기간이 2.8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많은 치료제 개발과 치료 수준의 향상으로 평균 생존기간이 9년 정도로 향상됐다.
박재형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은 비특이적 증상으로 인해 질환을 알아차리기 힘들고, 질환에 대한 낮은 인지도로 인해 폐동맥 고혈압으로 진단받기까지 평균 1년 6개월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그는 “폐동맥 고혈압 국내 환자의 평균 생존율은 3년 기준으로 54.3%에 불과한데, 진단이 되더라도 적극적인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가이드라인을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