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응급실에 내원한 아이 질환을 문진단계에서 미처 다 찾아내지 못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에 대해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초기 진찰 이후 지속적으로 환아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필요한 검사를 시행,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판단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 이지희 판사는 최근 A환아 측이 B대학병원 및 의료진을 상대로 낸 48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지난 2017년 A환아는 구토·혈변 증상을 호소하며 B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의료진은 A환아에 복부 엑스레이(X-RAY) 검사를 했고, 장폐색을 확인했다. 이어 복부 초음파 검사를 시행한 의료진은 대장 장벽이 두터워지고 소장이 늘어나 있었음을 확인했다. 아울러 우측 하복부 장벽에서 부종을 관찰했다.
장중첩증 또는 전장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혈액검사 후 장중첩증 딘단을 위한 공기정복술(공기관장)을 시행했다. 검사 결과, 장중첩증을 확인한 의료진은 A환아 입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입원 후 A환자는 혈변, 복무 팽만, 저혈압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의료진은 장중첩증의 합병증인 저혈량성 쇼크 및 패혈증을 의심했고 복부 엑스레이, 심전도, 심장 초음파, 동맥혈 가스, 혈액검사를 추가 실시했다.
이후 중환자실로 옮겨진 A환아에 의료진은 복부 초음파 검사를 재차 했다. 환아 대장이 협착되고 소장이 늘어져 있는 상태를 확인한 의료진은 저혈량성 쇼크를 진단했다. 그리고 수액요법, 승압제, 적혈구 수혈, 칼슘제 및 인슐린 투여, 탄산수소나트륨 투여, 항생제 투여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A환아는 복부팽만증상이 다시금 확인됐고, CT검사를 한 의료진은 장회전이상증을 의심하며 개복술 시행을 결정했다.
이어진 개복술에서 A환아는 장회전이상증으로 인한 중장염전증이 확인됐다. 이에 의료진은 괴사된 부분을 제거하고 소장의 양쪽 끝에 누공을 내는 수술을 했다.
이후 A환아 측은 B병원 의료진에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응급실에 내원했을 당시부터 중장염전증을 의심할만한 소견이 있었음에도 병증을 잘못 진단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장 대부분이 괴사된 이후 뒤늦게 개복술이 진행됐다며 총 4800만원을 배상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이뤄진 진료기록 감정촉탁 결과, 촉탁 기관은 "문진 당시 상태만으론 중장염전증을 진단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특히 응급실 내원 직후 진행된 복부 엑스레이 검사 결과, 중장염전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무기(gasless)’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단을 위해 공기정복술을 시행한 것 또한 통상적으로 적합한 의료 조치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법원은 이 같은 촉탁결과를 참고, "의료진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의사는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고,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과실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진 과정에서 병증을 파악하지 못했던 주장에 대해선 “내원환자 증상 원인을 곧바로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문진, 촉진, 시진, 이어 각종 검사를 통해 질병을 가려나가는 과정을 거친다”며 “증상 원인을 진단하지 못했단 사정만으로 곧바로 과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A환아가 앓은 중장염전증의 경우 진단과 처치가 시의적절하게 이뤄졌더라도 장의 괴사나 절제 혹은 사망과 같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사건을 맡은 조진석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의사)는 “검사 소견이나 증상으로 특정 질환이 확진됐다 하더라도 다른 질환이 추가로 병발할 수 있다”며 “의료진은 지속적으로 경과를 관찰하면서 추가적인 검사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이 사건은 원고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피고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의 주의 깊고 세심한 진료를 통해 신속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며 “피고 대학병원 의료진의 진료를 비난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칭찬해야 하는 사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