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재우 기자/
수첩] 지난해 4월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가 모 일간지에 게재한 ‘민간병원 덕분이라는 거짓’이라는 칼럼은 당시 의료계에서 적잖은 반발을 샀다.
김윤 교수 칼럼 요지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민간병원들의 기여도가 떨어졌고, 이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부침을 겪었다는 내용이다. 해당 칼럼이 발행된 후 대한의사협회는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 훼손과 질서 문란 등을 들어 징계 절차에 돌입했을 정도다.
앞서 밝히지만 이 글은 김 교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평생을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을 위해 헌신한 그와 논쟁할 능력이 기자에게는 많이 부족하다. 차라리 이 글은 민간병원을 위한 ‘변(辨)’이다.
최근 정부는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 등을 대상으로 허가 병상 수의 1%를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으로 운영토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징후는 있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병상 수 부족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병상 강제동원에 고개를 저었다.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병상 강제동원이 전례가 없었고, 사유재산을 동원한다는 것이 영 마뜩지 않았을 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구랍 12월 9일 “병상 목표치를 제시한 적 없다”며 “이달 동안 적극 협조를 바라고, 병상을 늘릴 때 애로사항을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은 열흘도 못돼 급변했다. 보건복지부는 12월 18일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치료병상 확보명령’이라는 공문을 지방자치단체 등에 발송했다. 민간의료기관 동원의 시작을 알린 셈이다.
이에 민간 상급종합병원은 "참여한다"고 답했다. 12월 22일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빅5 병원장 간담회에서는 병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의향이 확인됐다.
간담회에 참석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병원장들은 ‘쿨’ 하더라. 행정명령이 없었어도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마련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했었다”며 “보상에 대한 요구보다는 코로나19 중환자 병실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종합병원급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방안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확보보다 중요하다는 의료인력 모집에도 민간병원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조무사협회 등에 공문을 보내 선별진료소 근무 의료인력을 읍소했다.
이 결과 12월 13일부터 2주간 의사 198명, 간호사 440명, 임상병리사·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인력 343명 등 총 981명이 의료기관과 생활치료센터 등으로 추가 파견됐다.
의협은 지난 11월 말부터 공중보건의료지원단을 상설 조직으로 전환하고, 재난의료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지원단 산하에 의협 재난의료지원팀을 별도 구성했다. 재난의료지원팀에는 의사 1018명(12월 18일 기준)이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감염병예방법이 의료기관 병상을 동원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공하고 있지만 병상만 있다고 코로나19 중환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별도 투입돼야 할 의료인력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더욱이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병상 비율이 약 10%임을 고려할 때 민간병원 약 90%의 역할 없이 현 위기를 극복하기란 어렵다. ‘민간병원 덕분’이라는 말은 반드시 사실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코로나19 3차 대유행을 극복했다면 팩트(Fact)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민간병원 덕분이라는 거짓은 민간병원의 책임 부재로 읽히기보다 공공병원 파이를 늘리는 등 포스트코로나 시대 보건의료정책 수립을 위한 제언으로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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