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우리나라 최초로 인공와우 수술 1000례를 넘어선 명의(名醫) 이광선 소리의원 대표원장(前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대한이과학회 회장)[사진]이 지난 14일 향년 70세로 별세했다.
특히 고인은 급성 뇌출혈로 쓰러져 신속하게 치료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국내외 이비인후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고인의 소천에 의료계 선후배 및 동료, 제자들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의 제자였던 한 전문의는 “전공의들 사이에선 항상 ‘Sun’이라 불리우는 태양과 같은 분이셨다. 전공의 시절 교수님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이비인후과 전공의로서 큰 자부심 중 하나였다”며 슬퍼했다.
수 십 년 동안 이 원장을 거쳐 갔던 수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에선 “우리 귀를 고쳐주신 선생님,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글이 줄을 이었다.
고(故) 이광선 원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마쳤다. 1984년 원자력병원을 거쳐 1989년부터 1993년까지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로 재직했다.
고대병원을 떠난 그는 1994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단기연수를 받았다. 같은 해 서울아산병원에 합류하며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이비인후과학교실 교수에 부임했다.
학계에선 대학이비인후과학회 간행이사·학술이사·섭외이사, 대한이과학회 회장, 대한두개저학회 특별이사직 등을 역임했다.
고인의 전문분야는 인공와우수술이었다. 지금은 보청기로 해결되지 않는 난청환자에 대한 치료법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 원장이 교수로 재직하던 1990년대 말만 해도 인공와우수술은 국내서 대중화되지 않았다.
이 원장이 인공와우 이식을 처음 시작한 1999년만 해도 전국적으로 수술례가 100건이 채 되지 않았다. 그가 처음 수술을 시작한 해에는 단 두 명의 환자에게 수술을 시행했다.
인공와우 수술은 지난 2005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급속도로 수요가 늘었다. 기존에는 2500만원정도 들던 수술비용이 300만원선으로 낮춰졌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고인의 대기록도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속도를 냈다. 2005년에는 세계 인공와우 시장의 80%를 점하고 있는 호주 코클리어사로부터 세계 6만번째 수술 집도의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양이(兩耳) 수술’까지 급여가 인정되면서 수술 일정이 더욱 빠르게 채워졌다. 하루에 5건의 수술을 소화하는 날도 있었다. 같은 해 국내에서 인공와우 이식술을 받은 환자는 4천명을 돌파했다.
2015년 이 원장은 국내 최초로 인공와우 이식술 1000례를 달성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인공와우 이식술을 시작했던 일본보다 빨랐다.
전세계적으로 봐도 단일 술자가 그만큼 많은 수술건을 시행한 사례는 드물었다. 같은 시기 러시아, 중국, 폴란드 등에 4~5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기록을 세우고 얼마 후인 2016년, 정년퇴임을 1년 앞뒀던 그는 ‘후학에게 자리를 비켜주겠다’며 조금 일찍 서울아산병원을 떠났다.
이후 전영명 대표원장 권유로 이비인후과 전문병원 군자 소리귀클리닉(現 소리의원)에 적을 옮겼고 국내 난청사의 전무후무한 역사를 이어가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수술대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은 구자원 대한이과학회 회장과 안중호 서울아산병원 교수, 전영명 소리의원 원장이 전해온 추모사 전문이다.
대한이과학회 제15대 회장 구자원 (서울대·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
이광선 교수님께서는 197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서울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학교실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쳤으며, 미국 하버드 의대 교환 교수로 근무하였습니다. 원자력 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및 고려대학교 이비인후과 교수를 역임하셨고, 1994년부터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학교수로 근무하면서 5,000여 건의 중이 수술, 1,000여 건의 인공와우 수술 등 수많은 귀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셨습니다.
또한 100여 편 이상의 논문 발표, 30명 이상의 이과 전문의 양성 및 다수의 국내외 학회 강의 등 연구와 후학 양성, 교육에 언제나 열정적으로 임하셨습니다. 2016년 정년퇴임 이후에도 난청 환자들의 ‘잃어버린 청력 회복’을 향한 한결같은 목표를 가지고 군자 소리의원 인공와우센터에서 근무하시면서 많은 환자들의 ‘듣는 행복’을 찾아주셨습니다.
환자들의 올바른 청력 재활과 후학 양성에 대한 이광선 교수님 의지는 2009년~2010년 동안 대한이과학회 제9대 회장 재임 기간 중 ‘제1회 보청기 워크샵’을 개최하여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난청 환자들의 보청기 처방에 대한 최신 지견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또한 이비인후과 전공의 및 임상강사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인 ‘이과 검사의 술기와 판독’을 신설하여 청각학 관련 검사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더불어 2010년 대한이과학회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학술대회를 훌륭하게 잘 진행하셨고, 이과 수술 술기 및 측두골 미세수술 실습을 개최, 뛰어난 귀 수술 노하우를 다른 병원 의사들에게 전수해 주셨습니다.
난청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환자를 고립시키기 때문에 엄청난 재앙이라고 평소에 강조하셨던 이광선 교수님께서는 스스로에게는 엄격하시면서도 학회 동료나 선후배, 제자들을 항상 따뜻하게 대하시고 모범을 보이셨던 분이셨습니다. “환자를 단순히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순간 의사가 아니다”라는 소신을 항상 되새기면서 수술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갑작스럽게 소천하시는 바람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너무 큽니다. 부디 편안한 곳으로 가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안중호
이광선 교수님께서 항상 즐겨하시던 말씀들 중 "이비인후과 의사들 중에서도 ‘귀’를 전공한 의사는 ‘귀’한 의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귀’하듯이 환자들도 항상 ‘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교수님은 당신에게 의지하는 모든 환자들을 항상 최선을 다해 치료하셨고, 단순한 ‘병’이 아닌 ‘사람’을 치료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교수님은 특히 환자 치료에 있어서 ‘완벽 주의자’이셨습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에서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시작하기 전, 우리 병원 최초로 수술받게 될 환자에게 완벽한 수술결과를 드리기 위해 저를 비롯한 모든 의국원, 청각사들이 그 때까지 발표된 모든 논문들을 정리하고, 같이 공부하면서 준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이광선 교수님은 항상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를 즐겨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외래 진료실에서 환자의 고막검사를 위해서 현미경 혹은 이경 등을 통해서만 관찰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국내 최초로 고막 내시경을 도입하여 보다 선명한 고막 사진을 통해 환자와 함께 현재 귀 상태가 어떠하고, 앞으로 치료 계획 등에 대해 함께 결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셨습니다.
내시경은 조금만 부주의해서 떨어뜨리면 바로 고장이 나고, 엄청난 수리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광선 교수님의 담당 전공의로 근무하던 시절, 부주의로 내시경을 떨어뜨려 고장이 났고, 당시 4년차 선생님과 함께 사과드리러 연구실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엄청 혼날 것으로 위축돼 있었는데, 교수님은 오히려 "그런거야 수리하면 되는 거지. 다음부터 조심하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제가 안도의 한숨을 돌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전공의 수련을 마친 다음 귀를 전공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4년차 전공의가 돼 수술 보조의로서 교수님 수술을 도와드릴 때의 일화입니다. 제가 교수님 환자의 수술 준비를 하다가 말 그대로 ‘사고’를 쳐서 환자의 귀 일부를 손상시켰습니다. 이후 교수님께서 잘 수술하셔서 특별한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없이 마무리되었지만, 교수님 수술을 더 잘 도와드려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교수님을 뵐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찔리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과 회식자리에서 교수님께 소주 한잔을 따라 드리면서 '제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을 때의 교수님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다. 나는 너처럼 열심히 하려다가 사고치는 녀석을 더 좋아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다 수습해줄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열심히 해라"
저는 교수님의 그 한마디에 앞으로 제 평생을 ‘귀’를 전공한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주신 그 말씀은 두고 두고 감사히 남아있고 이제 후학을 양성하는 입장에서 교수님의 말씀처럼 제자들을 훌륭하게 키워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잊지 않고 열심히 뒤를 따르겠습니다. 편안히 쉬시옵소서.
군자 소리의원 대표원장 전영명
“선생님, 차 한잔 주시겠어요?” “무슨 차로 할까? 보이차, 철관음차?”
지난 5년간 선생님께서 끓여 주시는 차를 많이 마셨지만 지난 금요일 오후 선생님과 나눈 보이차가 선생님과의 마지막 차가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성경말씀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시종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생님의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한 솔로몬의 한탄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그동안 수고는 결코 헛된 수고들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은 것이 없다”고 하신 성경의 말씀처럼 선생님은 정말 자신의 일에 진정으로 즐거워하신 분이셨습니다. 제가 지난 5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면서 선생님은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깊이 있고 질서정연하시고 높은 완성도를 가지신 진정한 ‘스페셜리스트’이셨습니다. 차 마시는 문화와 클래식음악, 그리고 자전거 타기, 요리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도 이광선 원장님은 저희들의 선생님이셨습니다.
5년 전 선생님께서 은퇴 후 저희 병원으로 오시게 됐다는 말씀을 드리자 김종선 교수님께서 제게 하신 첫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교수가 오면 전기값이 많이 나올 걸! 이교수가 내 1호 박사라서 잘 알지. 이 교수는 자기 일을 정말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야.” 지난 5년간 선생님은 저희 들에게 정말 많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소 정적이시면서 무게감 있게, 그리고 성실하게 환자들을 대하시며 건강이 힘드실 때도 수술이나 진료를 거의 거르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 덕분으로 저도 주옥같은 클래식 명곡들을 들으며 수술을 하게 되었고, 저도 어느덧 보이차를 하루 한잔 이상 마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차 매니아가 되었답니다. 선생님 환자가 매년 보내주시는 홍어회를 코를 막고 먹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주셨고 병원의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마음 놓고 상의드릴 선생님이 제 곁에 계심에 정말 마음 든든했었습니다.
선생님과 마지막 보이차를 마신 그날 이제 코로나19 모임 제한이 풀리면 병원 스탭들과 오랜만에 식사한번 하자고 약속드린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렇게 선생님을 다시는 뵙지 못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안타까운 것은 선생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리지 못해 밀려오는 허망한 마음입니다. 그것은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병원을 옮기시고 불편한 것들도 많으셨을텐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고 조금이라도 병원에 도움을 주시고자 정말 열심히 저희들을 도와주셨고 저희 병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이제는 여기서 환자보고 수술하는 게 아산병원에서 보다 훨씬 편하게 되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선생님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저희 병원의 눈높이도 더욱 자라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저희 병원의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감사할 일들이 이토록 너무 많았는데도 오래 오래 저희 곁에 계실 것이라고 믿고 살았기에 제대로 감사하다는 표현을 생전에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편안하게 누워 계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선생님이 저희와 함께 해주시고 사랑을 나누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소리에서 저희들에게 보여주신 선생님의 열정과 애정, 그리고 저희들과 환자들에게 보여주신 선생님의 잔잔한 눈가의 미소는 영원히 저희들 마음에 깊이 간직될 것입니다.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면 저는 진한 보이차 한잔을 다시 나누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