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산부인과 의사가 술에 취한 상태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잠잠했던 ‘음주진료’가 화두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음주진료’ 논란이 심심찮게 발생했음에도 아직 관련 처벌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여서 이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산부인과 의사의 음주수술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열 달 품은 제 아들을 죽인 살인자 의사와 병원을 처벌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청원인은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에게서 심한 술 냄새가 풍겼다"고 주장했고, 경찰 역시 "의사 음주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으로, 세간의 관심은 음주수술 의사에 대한 처벌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 의사의 ‘음주수술’에 대한 구체적 처벌 규정은 없다. 다만 ‘비도덕적 진료행위’라는 두루뭉술한 규정을 적용해 처벌이 가능하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해 1년의 범위에서 자격을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비도덕적 진료행위’란 의료인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 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진료 중 성범죄(자격정지 12개월) △처방전 없이 마약 등 투약(자격정지 3개월) 무허가 의약품 사용(자격정지 3개월) 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는 ‘음주진료’ 역시 포함된다. 그동안의 판례상 일반적으로 약 1개월의 자격정지를 받는다.
실제 당직 근무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등 음주 상태로 환자를 진료하던 의사들이 적발됐지만, 대부분 자격정지 1개월 처분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음주상태로 의료행위를 하다 적발돼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의사는 총 7명에 달했다.
응급실에서 야간진료, 당직 근무시 음주 상태로 환자를 진료했다가 적발된 의사가 5명으로 가장 많았다. 술을 마신 채로 봉합수술을 하다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받았다.
-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 자격정지 1개월
- 번번히 실패한 입법, 이번엔 성공여부 관심
물론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는 ‘음주진료’라는 용어가 명시돼 있지 않다. 단지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을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음주진료의 경우 행정처분 대상일 뿐 음주운전과 같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의료법상 아직 음주진료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민권익위는 지난해 음주진료 등과 같이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일부 행위에 대해 별도 규정을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다만 이행기간은 올는 12월까지로 명시한 만큼 아직은 음주진료에 대한 행정처분은 ‘1개월 자격정지’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물론 음주진료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업무상과실치상 또는 과실치사 등의 형사처벌 받을 여지는 남아 있다.
역으로 음주진료를 한 사실이 명백하더라도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라면 형사처벌은 불가하다.
청주 산부인과 사건의 경우 해당 의사 음주와 태아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성립된다면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넘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하지만 의료분쟁에서 의사 잘못을 입증하는 게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의사는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적용해 ‘면허정지 1개월’ 처분을 받을 공산이 크다.
한편, 음주 의료인을 처벌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국회에서 수 차례 시도됐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 의사가 마약이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의료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됐지만 폐기됐다.
가천대 길병원 성형외과 전공의가 술에 취한 채 응급환자를 수술해 사회적 파장이 일어난 데 따른 조치였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발로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2018년 2월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미숙아에게 인슐린 과다 처방을 한 사건으로 의료인의 음주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으나 법 개정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의사면허 관리 강화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해당 법률은 ‘금고형 이상의 의사에 대한 의사면허 취소’가 골자로, 음주진료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을 담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