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돌이켜보면 사실 그 때는 좀 두려웠던 게 맞았던 것도 같습니다. 지난 2020년 2.1 뉴스데스크. 한국에서 앵커가 ‘두렵지는 않으세요?’ 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가오는 ‘전쟁’
갑작스런 물음인 듯 대응하긴 했지만 사실은 미리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다고 앵커가 귀띔은 해 준 상태였습니다. 조금 걱정은 되지만 “괜찮습니다” 정도 답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준비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On Air 상태에서 질문을 받자 마치 돌직구가 들어온 듯이 좀 위축이 된다느니 하면서 얼버무렸다고 생각했는데 TV 화면에는 겁먹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들켜버렸던 것 같습니다.
방송 후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중국 베이징에 있는 저 기자 불쌍하다. 어서 귀국 시키세요” 라는 말들이 많이 올랐습니다.
제 얼굴이 좌우 균형이 안 맞고 비뚫어져 보인다며 몸에 이상이있는 거 아닌지 걱정해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처음은 별 거 아닌 듯 했습니다. 2020년 첫날 이 곳 베이징특파원들은 대개 타이완 총통 선거 결과에 대해 중국 본토와 타이완 양안관계를 주제로 리포트했습니다.
2019년 12월부터 중국 남부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기사가 외신을 시작으로 조금씩 퍼지고 있었습니다만, 몇 주 전에 흑사병이 내몽고 지역에서 발발했다는 기사처럼 이번 전염병이란 것도 한 일주일 지나면 잦아들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월 중순부터는 조금씩 기사가 커졌습니다. 무언가 생긴 거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지면서 매일 관련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그 때도 하지만 정작 베이징 시민들에게서는 아직 그런 위기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촬영과 인터뷰를 위해 베이징 시내병원이나 기차역에 나갔을 때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로 사람들 얼굴을 주시하면서 마스크를 찾아서 한참을 기다리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드러나긴 했지만 당시는 중국이 일년 최대명절 춘절을 앞두고 있는 때라 너무 분위기를 깨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간 상태였습니다. 마침 3월에 예정된 중국 최대정치행사 양회를 앞두고 지방정부들도 각 지역에서 일년 보고를 하던 시점이었습니다.
나쁜 소식이 상부에 전해지는 것을 피하려고 당시 우한 병원에서도 이미 원인 불명의 환자들이 입원실을 채우기 시작했지만 이런 보고 시점은 지방정부 양회 뒤로 미루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춘절과 양회가 코로나19 초기 환자를 축소하고 발병을 은폐하고 초기 대처에 실패한 원인이 되었던 겁니다.
이후에는 빠르게 진행이 됩니다. 1월 21일에 사스 영웅이라 불리는 중국 최고 전염병 전문가가 “사람 간 전파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공식화했고 바로 이틀 뒤에 1천만명이 넘는 우한 시민에 대한 전면 봉쇄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춘절 전날인 다음날 24일엔 전국에 이른바 전쟁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중국은 춘절 전날 전국민이 지켜본다는 CCTV 종합오락프로그램이 있는데 여기서 소위 국민 앵커들과 출연진들이 일렬로 늘어서 모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방역 전쟁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마침내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지요. 항상 차분한 태도로 뉴스를 진행하던 중년 여성 앵커의 그 결연한 외침과 엄숙한 표정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베이징에 있습니다”
회사 "북경 철수” 물음에 "마스크를 많이 많이 보내달라” 요청
2월은 중국 코로나19 상황을 거의 매일 "자, 이제 베이징 연결해보겠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생방송으로 전달했습니다.
현지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또 이 곳 현장에서의 느낌을 충실하게 전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의 방송 연결은 마치 오지에 들어가 홀로 구덩이에 빠져 있던 저의 생존을 스스로 확인하고, 또 세상에 확인시키는 수단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지구 밖 우주선과의 - 하루 한 번 고정적으로 연결이 되서 안부를 묻는 - 교신과 같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여하튼 당시는 이 곳에 점점 위축감과 두려움이 다가오던 때였고 방송에서도 그런 현지의 느낌을 전하려고 했었습니다.
아직 한국에까지는 공포가 전달되지 않았던 초기 상황이었고 이 감염병이 어느 정도의 전염력을 가지고 있는지 등 모든 것이 불확실한 때라서 불안감이 컸습니다.
집에 들어가는데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체온 측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고 바로 어디론가 끌려가야 한다. 사람들이 겁을 많이 내서 택배도 집 밖에 두고 가라고 하고, 택배상자를 소독하고 물건을 꺼낸다.
집에 가면 신발을 현관 안에 들이지 말라고도 한다 - 물론 며칠 지나서 모든 택배기사 출입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막혔습니다.
이런 말도 했었습니다. 베이징에 폭설이 내렸는데 눈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섞여 내린다는 말들까지 돌고 있다. 베이징은 눈이 귀해서 아이들이 눈 오는 날을 매우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꽁꽁 집 안에 갇혀 있으니 눈은 몇 날이 지나도록 하얗게 쌓여 있기만 했다. 모든 소문들이 흉흉하던 때 였습니다.
회사로서는 전쟁이 발발한 최전선에 척후병 하나 보낸 것과 같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습니다. 전염병 전선에 추가 지원병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대신 전선에서 철수 의향이 있느냐고 제게 물어왔습니다.
저는 철수 대신 “마스크를 많이, 식구들과 여기 현지직원들용까지 많이 많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베이징 정말 괜찮나요?
그리고 1년이 좀 더 지났습니다. 베이징에 있는 저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들은 두 부류 정도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중국 코로나 현황에 대한 뉴스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한국이 아직도 이렇게 잡히지 않고 있는데 그 인구 많은 나라 중국은 어떻겠나?’ 하는 걱정에서 물어보셨을 겁니다. 또 다른 분들은 중국 상황은 뉴스에서 보긴 했지만 ‘중국 발표를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에서 나온 걱정을 하셨습니다.
중국은 자국 내 코로나 확진자 발생이 지난 2월 이후에 거의 잡혔습니다. 간헐적으로 한 두명씩 나오기도 합니다만 거의 매일을 0명이란 숫자를 찍고 있습니다.
14억명 인구 가운데 이 정도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상은 이미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베이징에선 지금 여럿이 모여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합니다. 그래도 마스크는 아직 필수품이어서 마스크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는 분위기지만 남쪽 지역에선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눈에 띈다고 합니다.
지난 1월과 2월에 동북 지방에 확진자 집단 감염이 발생했고 춘절 대이동 기간에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가 겹쳐 있어서 방역이 강화됐을 뿐 사실상 이런 일상은 이미 지난 해 가을부터 일반화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중국 내 코로나 통제가 성공적이란 것을 반영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중국에 있는 저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한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무엇보다 방역 정책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베이징 교민들이 밀집한 왕징 지역에 있는 한 건물에서 확진자 한명이 나왔습니다.
왕징은 주말 토일 이틀에 걸쳐 전원 코로나19 검사 실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모든 아파트 단지마다 주민들이 몰려나와서 한두시간씩 줄을 서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베이징을 둘러싸고 있는 허베이성 인구 천만명의 스좌좡이란 도시에서도 올해 초 확진자가 하루에 수십 명씩 나오는 상황이 됐는데 도시를 한 달 가까이 봉쇄해서 스좌장 시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걸 원천적으로 막아버렸습니다.
허베이성 한 농촌 지역에서는 집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어서 관리가 쉽지 않자 2만명 주민을 모두 버스에 태워서 이동시켜 버렸습니다.
인근 지역 벌판에 임시 처소를 급조해서 그 곳으로 이주시켰는데 모아 두고 관리하기가 수월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중국이니까 가능한 통제 정책이겠습니다.
"무증상 감염자, 확진에 미포함 등 발표 자료 일부 의문”
물론 베이징발 코로나 확진자 데이터가 완전히 정확한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른바 무중상 감염자는 수는 매일 발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넣지 않습니다. 따로 분리 발표하면서 집중 관리 대상에 포함시킵니다.
또 해외발(發 )유입과 국내 자체 발생을 분리해서 해외에서 유입된 경우는 국내 코로나 확진자 통계에서 빼서 따로 집계합니다.(우리나라도 따로 집계하긴 하지만 매일 확진자 수 발표에는 포함시킵니다).
중국의 이런 집계 방식이 좀 어거지처럼 보일 때도 있는 것이 외국에서 들어온 지 한달이 지난 뒤 검사에서 확진자로 판정이 나도 해외발로 집계해 버립니다.
이미 입국 당시에 의무화된 격리를 마치고 중국 내에서 이 곳, 저 곳을 왔다 갔다 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베이징발 코로나 확진자 데이터가 완전히 정확한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른바 무증상 감염자 수는 매일 발표하는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넣지 않습니다. 따로 분리해서 발표하면서 집중 관리대상에 포함시킵니다.”
이렇게까지 '국내 발생’ 숫자를 통제하려는 것이 오히려 더 리스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0명에 집착하다보니, 또 확진자 발생시에 책임자 문책이 강하게 이뤄지다보니까 확진자가 발생해도 숨기고 싶은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
중국은 금년 7월에 중국 공산당 창당 백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 2월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예정돼 있습니다.
중국의 위상 강화를 세계에 선포하고 무엇보다 ‘코로나19 발원국’의 불명예를 떨치기 위해서라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으로선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중국이 최근 백신여권을 시범 출시하고 중국산 백신을 맞은 외국인들에 대해선 중국 입국 비자신청을 코로나 이전과 같게 해주겠다는 것도 이 같은 중국의 필요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중국 백신을 승인하지 않았음에도 주한중국대사관은 이미 ‘중국산 백신 맞고 중국 오세요’ 라는 공지를 올려놓았습니다. WHO는 이런 백신여권에 대해 불평등과 차별을 우려하면서 반대 입장을 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일단은 나라별로 집단면역을 확보해나가는 것이 순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임무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갈 때는 격리없이 집에 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