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백성주 기자] 그동안 제약사와 의사 간 발생하던 불법 리베이트가 최근 도매업체와 의료기관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료기관은 의약품을 제약사로부터 직접 납품받기도 하지만 의약품을 직접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중간에 도매업체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기관 일부는 도매업체의 상당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수의계약을 통해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병원에 직접 의약품을 납품할 수 없는 제약사는 도매업체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절대적 ‘을’ 위치에서 도매업체에 납품 계약을 맺게 된다.
도매업체는 이러한 제약사들에게 싼 값에 약품을 공급받고, 병원에는 비싸게 팔아 수익을 극대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상급종합병원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의약품 도매업체의 수익이 많게는 3배 이상 많다는 사실을 근거한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이 같은 사실이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공급내역보고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에 납품하는 일반 도매업체의 3년(2017년~2019년) 평균 수익율은 3.5%였다.
반면 대형병원 등에서 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도매업체의 수익은 무려 연평균 13%였다.
실제 A병원 계열의 경우 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A도매업체는 제약사로부터 상한금액 대비 13.4%의 할인된 금액으로 납품을 받고, 병원에는 할인된 금액 없이 상한금액 그대로 납품을 하고 있었다.
의약품을 전달만 하면서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반면 병원들은 도매업체로부터 약품을 고가에 받더라도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을 받기 때문에 손해가 없다. 결국 국민들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 지출금액만 상승하게 된다.
병원들이 도매업체로부터 받는 리베이트 방식은 최근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한 방식과 같이 배당금 형태로 나눠가진다. 즉 비싼값에 약을 받아 도매업체의 수익을 올리도록 하고, 배당으로 돌려받는 것이다.
유통업계 “직영 도매업체, 사실상 병원에서 운영”
최근 서울의 K대학교병원 내 지하에서 월세 6000만원을 내고 있는 의약품 도매업체 사례가 부각된 바 있다. K대병원 의약품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도매업체 00팜은 인근 부동산 시세의 20~30배에 달하는 월세를 납부했다.
일각에선 이렇게 비싼 월세를 내는 이유가 ‘약품의 독점적 납품’을 전제로 한 리베이트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소위 ‘병원직영도매업체’들에 대한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의약품 유통업계는 이로 인해 수십년째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현행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직영도매를 ‘사실상’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의약품 유통업계의 지적이다.
약사법 제47조 4항에선 ‘의약품 도매상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직접 또는 다른 의약품 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판매해선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금지 대상은 ▲의약품 도매상이 개인인 경우 그의 2촌 이내의 친족 ▲의약품 도매상이 법인인 경우 해당 법인의 임원 및 그의 2촌 이내의 친족 ▲의약품 도매상이 법인인 경우 해당 법인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자(해당 법인의 총출연금액·총발행주식·총출자지분의 100분의 50을 초과해 출연 또는 소유하는 자 및 해당 법인의 임원 구성이나 사업운영 등에 대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법인인 경우 해당 법인의 임원 및 해당 법인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자 ▲의약품 도매상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법인 등이다.
하지만 의약품 유통업계는 이 중 ‘출자 지분의 100분의 50 초과 출연’이란 부분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의료기관이 직영도매의 49%의 지분을 소유함으로써 우월적 지위를 갖으며 입법 취지를 무색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성 국민의 힘 의원은 “병원과 도매업체 간 부당 이득은 우리 국민들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 재정 건전성에 위협이 된다”면서 “요양기관에서 도매업체를 선정할 때 경쟁입찰을 의무화하고, 불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병·의원 ‘직영 의약품 도매상 근절’ 법안 추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여당에선 의료기관 개설자가 법인 의약품 도매상 주식이나 지분을 가진 경우 해당 도매상은 아예 의료기관에 의약품을 팔지 못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현행법은 의료기관 개설자나 약국 개설자가 법인 의약품 도매상 주식·지분의 50%를 초과 보유하거나 특수 관계에 있으면 해당 도매상이 해당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약을 팔지 못하도록 규정됐다.
법인 의약품 도매상 지분을 과다 보유한 의료기관 개설자가 지분관계나 특수관계인 지위를 이용해 의약품 실거래가를 높이거나 의약품 유통질서를 문란히 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의약품 도매상 허가를 받을 수 없게 정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하지만 현행법망을 피해 A도매업체처럼 법인 도매상 주식·지분을 50% 이하로 보유,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법인 도매상에 자신의 의료기관과 독점 거래를 하도록 강제해 의약품 실거래가를 부풀려 국민의료비 부담을 가중하고 건보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타 의약품 도매상의 약 공급가능성을 차단해 유통질서를 문란히 하거나 불공정거래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에 전 의원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법인 도매상 주식·지분을 가지면 해당 도매상은 의료기관·약국에 의약품을 팔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같은당 서영석 의원도 의료기관 또는 약국 개설자가 의약품도매상의 주식·지분을 30%대로 대폭 축소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그간의 폐해를 막고자 의료기관이 도매상 지분율을 대폭 축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수관계인의 범위를 의약품도매상에 대한 총출연금액·총발행주식·총출자지분의 100분의 49에서 30으로 축소, 출연 또는 소유하는 경우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전혜숙 의원은 “병·의원이나 약국이 의약품 도매상을 운영할 수 없게 하거나 반대로 의약품 도매상이 병원이나 약국을 운영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면서 “법을 악용. 국민의료비 부담을 키우고 건보재정 누수를 높이며 불공정거래, 의약품 유통질서 혼란을 유발하는 현실을 개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안 발의됐지만 중·대형병원 직영도매 설립 여전
이 같은 법안 발의에도 직영도매를 준비하는 중·대형병원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의약품 유통업계는 Y의료원(A도매업체), K의료원(P도매업체), B의료원(W도매업체) 등이 사실상 직영도매를 운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최근 E의료원과 C의료원, D의료원, H의료원 등도 직영도매를 설립했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병원과 의약품유통업체가 지분 49대 51을 가진 업체를 개설했다는 소문과 함께 직영도매 추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방에서도 중형병원을 중심으로 직영도매업체 개설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방 중형병원은 수도권 대형병원보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점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직영도매업체를 개설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코로나19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직영도매업체를 통해 수익을 올리려는 병원이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역시 국회에 직영도매 개설 반대 의견을 제출한바 있다. 무엇보다 거래금지 적용 보유지분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이 검토되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직영도매 개설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품유통협회 관계자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례 방지를 위해 법안이 발의된 만큼 해당 사안을 연착륙해야 한다”라며 “여전히 편법으로 대형병원이 직영도매 개설을 시도하는 데 문제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법상 병원 지분율이 49%는 된다고 해서 이를 꽉 채우라는 의미가 아니다. 병원이 직영도매를 설립치 않기 위해 만든 만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지만 꼼수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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