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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오랫동안 투병 중이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별세 소식에 세상은 항상 그러했듯 삼성그룹의 경영권과 상속 등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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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한 재벌가의 중요한 인적 변화인 만큼 세간에 그 정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삼성’이라는 재벌가와의 인연은 물론이고 어떤 인적교류도 전혀 없었던 필자였기 때문에 관심은 오로지 한 가지, 세계적인 인류 문화의 유산에 해당하는 귀중한 미술품의 운명이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엄청난 가치가 있는 세계적인 미술품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우리가 문화민족임을 자랑하고 자부한다면 단 한 점의 작품도 이 나라를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 뿐이었다.
미술품은 영혼이 살아 깃든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게 돼 있다는 미신 같은 속설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예를 든다면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歲寒圖)는 얼마 전 소장자가 국가에 기증한 국보급 작품이다. 나라의 운명과도 같이 그 귀중한 작품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후지스까 지카시에게 흘러들어갔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선생께서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위험을 무릅쓰고 도일해 소장자를 찾았다.
아주 여러 날에 걸친 소전 선생의 진솔한 호소와 눈물에 감격한 나머지 소유주의 양보로 되찾아 온 국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자랑스러운 일이며, 감동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이 또한 소전 선생의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작품이 스스로 움직였다는 억지 같은 필자만의 속마음을 적어 본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삼성가(家)에서는 12조원의 상속세를 납부하게 됐단다. 이와는 별도로 6조원대 가치로 추정할 수 있는 미술품 전체(이건희 컬렉션)를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감사하고 고마운 엄청난 결정을 했다고 전해졌다.
‘억(億)’ 단위 금액을 가장 큰 돈의 단위로 인식하며 살아 온 사람이기 때문에 ‘조(兆)’라고 지칭되는 엄청난 화폐 단위는 오히려 남의 나라 얘기 같이 느껴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타인의 돈에 대한 얘기만큼 재미있고 무책임하게 떠들 수 있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남의 재산 변동 상황이나 돈 이야기는 호사가들의 빼놓을 수 없는 술안주가 되기 십상이다.
어쨌든 이렇게 상상하기 힘들게 많은 상속세를 납부한 사람도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국가에 헌납한 명품들을 국제경매 가격으로 추정해 보면 25조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다. 귀한 미술품을 국가에 헌납한 선행 또한 세계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 엄청난 상속세와 헌납품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품속에 안기게 됐다. 상속세 규모도 그러하고 문화재에 해당되는 예술품 환원은 가슴 벅찬 일이고, 획을 긋는 역사적 경사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당 개 3년이면 글을 읽는다(堂狗風月)는 말과 같이 어깨 너머로 익힌 바에 의하면 ‘이건희 컬렉션(Collection)’이라고 지칭되는 내용은 두 가지 면에서 훌륭한 가치가 있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작품들의 가치와 면모가 가히 평가하기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예산과 계획된 정책을 통해 추진했어도 달성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소위 작품을 평가하고 구매하는 과정 자체가 단순히 돈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식의 저급함을 탈피하고 미술품 선별 과정과 면밀한 진행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는 풍문이다.
즉, 수집 과정 자체가 예술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문화유산에 해당하는 명품을 대할 수 있었고 품에 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넘쳐흐르는 시빗거리와 철면피와 뻔뻔함 그리고 도척(盜跖)의 악행을 능가하는 천인공노할 범죄에 대한 소식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인간말종들이 넘치는 시대다.
이런 때 이렇게 반갑고 가슴이 뛰는 소식을 듣고 풍만하게 부푼 마음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덕목의 실천을 살펴 볼 때 우리는 문화민족임이 틀림없고 몸속에 맥맥히 흐르는 피를 속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실이 아무리 험난해도 살아 볼 가치가 있는 세상이라고 홀로 미소지었다.
그러나 황홀함에 빠질 수 있었던 것도 잠시, 들어서는 안 될 말이었고 눈과 귀를 의심해야 할 일들이 벌어졌다.
어느 한 공당의 인사가 말하기를 “삼성어천가 때문에 토할 것 같은 하루였다. 법적으로 당연히 내야 할 상속세를 내겠다는 게 그렇게 훌륭한 일인가. 왜 삼성 상속세는 세계 1위일까? 삼성보다 매출이 많은 글로벌 기업보다도 삼성 일가의 지분이 많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정경유착, 노동자와 하청기업을 쥐어짠 흑의 역사는 잊어버렸나”라고 했다.
이 사람은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즐겨 애창하는 ‘선출직’ 권력인 국회의원이다. 본인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공헌은 어느 수준인지 궁금하다.
어떤 방송인은 말하길 “삼성이 그림을 사회에 기부한 것은 상속세를 현물로 납부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다. 고마워할 일이 아니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라고 했다.
세상을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고 자기의 견해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이들의 저급하고 편협 된 생각과 망언에는 토조차 달고 싶지 않다. 이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인생 경륜을 쌓고 고매한 인격을 쌓았으며, 사회적 공헌을 했는지 모르지만 본인들 스스로의 입지와 위치를 살펴보고 말을 했어야 했다.
어느 시골 장터의 뒷골목에서 장국밥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있던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세상 물정에 관심이 많은 사람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의 언행은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까지 저급하고 품격이 떨어지는 국민으로 추락시키는 물귀신 같은 행동으로 느껴져서 화가 난다.
논평이나 언급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나, 방송 마이크는 정제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내 뱉으라고 주어진 게 아니다.
문화민족의 국민이 되기 싫거든 귀하들 혼자 그렇게 할 것을 권고한다. 국민들은 귀하의 소유물도, 하인도 아니며 더군다나 귀하들의 일천하고 천박한 철학을 강요받아야 될 만큼 하찮은 경륜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문화국민으로의 삶은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