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임신부 코로나19 백신 접종 안전성을 두고 학계와 정부 입장차가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이 30%를 돌파하며 속도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 권고사항과 정부 방침이 상반되면서 진료 현장에서는 혼란이 일고 있다.
13일 질병관리청이 운영 중인 코로나19 백신 및 예방접종 안내 홈페이지 ‘바로알기’ 페이지에 따르면, 질병청은 ‘임신 중일 때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나요?’란 질문에 ‘임신부의 경우 아직 임상시험 결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안전성 및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신부는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질병청의 이 같은 지침은 앞서 의학계 여러 전문가가 내놓은 의견과는 차이가 있다.
의학계는 그동안 국제기구 지침과 해외 임상시험 결과 등을 근거로 들며 ‘임신부도 코로나19 백신접종이 가능하다’고 설명해왔다.
감염병 전문가인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달 열린 한국모자보건학회 춘계연수강좌에서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권고에 따르면 임산부(임신 중인 여성 및 출산한 여성)는 백신접종이 가능하다”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CDC 권고사항은 지난 4월 ‘화이자와 모더나에서 만든 mRNA 백신이 임신 중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로셸 월렌스키 CDC 국장은 백악관 브리핑을 통해 "CDC는 임신한 사람들도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미국산부인과의사회(ACOG) 또한 임신부 백신접종을 권고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ACOG는 올해 초 "백신 접종 기준에 부합하는 여성 중 임신부가 백신으로부터 유예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신부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백신을 통해 위험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질병청 지침은 이처럼 공신력있는 국제기관 및 해외 전문가 단체의 권고와 상반된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정열 한국모자보건학회 이사장(일산백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지금까지 발표된 국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접종이 임신부는 물론 태아에게도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질병청의 임신부 백신접종이 불가 지침은 국제 학계 의견과 정 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면 코로나19에 감염된 임신부의 경우 중증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발표된 바 있다.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맞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신부를 대상으로 한 국내 임상시험 결과가 없다는 우려에 대해 한 이사장은 “미국에서 진행된 화이자·모더나 백신 안전성 연구는 다양한 인종의 임신부가 대상군에 포함된 것으로 안다. 이 연구에선 아시아인으로부터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없다”고 덧붙였다.
방역당국 또한 이러한 해외 학계 지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일 진행된 코로나19 예방접종 설명회에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등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임신부가 백신 접종 금기 대상에 들어가 있지 않다. 임신부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생기는 위험이 크다는 측면에서도 해외에서는 임신부에 대한 접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굳이 접종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국내 임신부는 접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부와 학회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고민에 빠진 것은 직접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다.
한 산부인과 개원의는 “코로나19 백신은 지금도 안전성 논의가 진행 중이다. 부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의사는 정부 지침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질병청 지침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않다. 병원에 따라 임신부 백신접종이 가능하다고 안내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며 상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