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필요성이 훨씬 높아진 공공병원의 확충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및 보조금 비율 상향 조정 등이 필요하다. 정부는 다른 사회간접자본(SOC)인 고속도로·철도 사업 등에는 예타를 면제해온 반면, 공공병원 사업에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는 수십 년 째 공공병원 확충을 가로막아온 원인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노조) 등이 17일 개최한 ‘코로나19 시대 공공병원 확충 및 강화를 위한 실질적 걸림돌’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나순자 보건노조 위원장은 축사에서 “최근 코로나19 전담병원의 30대 간호사가 뇌출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역 대책만 강화했다가는 의료 노동자들에게 부담이 가해지므로 이제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개선점을 찾아야 할 시기”라고 토론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예타 및 보조금 비율, 공익적 적자 등에 관한 의견이 오갔다. 예타는 현행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재정지원규모 300억원 이상인 사업에 대해 실시된다.
이는 경제성·정책성·지역 균형발전 등을 지표 평가로 삼는데, 이중 경제성 항목은 특히 공공병원 확충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정재수 보건노조 정책실장은 “공공의료의 경우, 수익성이 낮아 예타 중 경제성 분석 항목 때문에 통과가 안 된다”며 “특히 수요항목에서 입원·외래환자 등에 대해 추정하는데 이는 애초 공공병원이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이어 “일반적 공공의료기관 설립 비용은 다른 SOC 설립 비용으로 따지면 고속도로 4~7km, 어린이집 100개, 유치원 40~50개, 노인요양시설 30개 설립 비용 수준”이라고 빗대며 “추진 여부는 정부 의지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예타 경제성 평가 시 수익성도 고려되는데, 이에 기존 지역 거점 공공병원 등이 수년 째 적자를 기록해 온 것에 비춰 신규 공공병원 확충에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수익’과 ‘적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도 나온다.
임준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장은 “의료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병상·의사 수 및 인구·병원 수·인구당 병원 수 등이다”며 “의료수익은 병원 역량과 배후진료권 수익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있으나 적자는 이와 관련성이 없다”고 분석했다.
취약 중진료권에서 공공병원이 확충될 경우 병원 적자가 늘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보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예타 경제성 평가 비중 낮추고 지역균형발전 항목 등 중심 평가 필요"
공공병원 확충을 저해하는 또 다른 문제는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다. 보조금 지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공공병원 확충 비용은 대략적으로 정해져있지만 재정자립도가 지자체별로 달라, 이를 추진할 엄두도 못내는 지자체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의료취약지역인 경북 영양군의 지난해 지자체 예산은 3136억원이었다. 이중 공공병원 건립에 필요한 150억~260억은 해당 지자체 전체 예산의 8%나 되므로 선뜻 공공병원을 짓겠다고 나서기 어려운 상황으로 해석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 등을 통해 보조금 지급률을 현행 50% 수준에서 특별자치도 및 시군구 60% 등으로 한시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60%로는 부족하다, 80%까지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반면, 획일적으로 지급률을 높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지방별 재정자립도를 고려하면 획일적으로 보조급 지급률을 높이면 수도권과 지방 격차는 또 벌어질 것”이라며 “탄력적으로 보조금 지급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정훈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지자체별 재정 상태를 파악할 때 재정자립도 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된 영양군의 경우 재정자립도는 5%였으나 재정자주도는 60%다. 어떤 지표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 과장은 “2019년 기준 재정자립도가 50%를 넘는 지자체는 용인·성남·서울 서초 등 3곳 밖에 없었다”며 “모든 지자체에 80%의 보조금 지급률이 적용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예타의 경제성 평가 비중을 낮추고 지역균형발전 항목 등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한다”며 “가능하면 면제가 이뤄지도록 복지부도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