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임수민 기자] 오랜시간 함께 팀을 이뤄 근무하는 의료계가 특성상 타분야에 비해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의 문제를 공론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봉옥 국가생명윤리위원장(前 한국여자의사회장)은 한국여자의사회가 지난 20일 개최한 서태평양지역 국제학술대회에서 ‘의료 분야 성폭력(Sexual Violence in Medical and Healthcare Fields)’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봉옥 위원장은 “2017년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MeToo)이 확산되기 전부터 대학이나 병원에서 직장내 성희롱이나 성폭행 등을 겪고 조언을 구하는 학생과 전공의들이 많았다”며 “원치 않는 접촉부터 연락, 제스쳐, 이미지 전송, 성폭행까지 다양한 종류의 피해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의료계 내부에서 성 관련 문제는 상당히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2009년 여자의사회가 전국 41개 의과대학생 1209명과 전공의 및 인턴 122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40%가 주변에서 성희롱 사례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미투 운동이 진행된 이후인 2017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28.7%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행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또한 10.2%에 달했다.
가해자는 교직원, 선임 레지던트, 동료 및 기타 병원의 직원 등이었다.
같은 해 진행된 191명의 간호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또한 응답자 절반가량이 임상실습 중 신체적, 언어적, 시각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 전공의 시절 성 문제는 향후 취업 및 근무성과 등 영향"
하지만 피해자의 84.5%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는 의료계가 타분야에 비해 오랜 기간 더 함께 일하기 때문에 학생 때의 일이 향후 취업과 근무 성과에까지 영향을 주는 특별한 환경이라는 특징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에도 지난 2018년과 2020년 경기도 한 대학병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선배 전공의에게 성추행을 당했지만 병원에 소문이 나는 점과 보복 등이 두려워 신고조치를 하지 않다 최근에서야 피해사실이 밝혀진 일이 있었다.
김옥봉 위원장은 “학생이나 전공의 시절 성희롱이나 성폭행 등의 문제는 장래 취업뿐 아니라 이후의 업무 수행에도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또한 의료계는 서로 오랜 기간 함께 팀을 이뤄 근무하고 야간근무와 교대근무 등이 잦아 성 문제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의료계 내 성 문제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정부나 다른 전문가단체와 협약을 맺고 적극 대응에 힘쓰고 있다.
김봉옥 위원장은 “한국여자의사회는 성추행이나 성폭행 피해자들의 응급상황 시 도움을 주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정부와 함께 협업을 진행 중”이라며 “또한 2010년에 한국여성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진료절차 매뉴얼을 발간해 국내 의료기관에 배포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의과대학생 및 전공의들과의 주기적 만남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성 문제와 성 평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봉옥 위원장은 의료계 성 문제 예방 및 대응을 위해 ▲성폭력 위험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소규모 교육 및 그룹 멘토링, 온라인 교육 ▲한국여자의사회의 의대 및 병원 성폭력 대책 위원회 적극 참여 ▲기관 내 성폭력 긴급신고체계 구축 ▲2차 피해 방지 위한 즉각적인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조치 ▲여성 변호사 등 전문가와 협업 등을 제시했다.
그는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교육이나 실습 등을 이유로 성 문제를 겪은 이후에도 가해자와 분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국민들에게 건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계 성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