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임수민 기자/
수첩] "급한데 저기 남은 것은 내가 해볼까. 요령만 좀 알려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 뉴스 보면 간호조무사나 사무장이 대신 수술을 하더만, 오히려 의사보다 더 낫다던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대사다. 일반인이 의사를 향해 던지는 조롱 섞인 이 대사에는 최근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된 ‘대리수술’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이 처럼 드라마가 의사나 의료인이 아닌 자가 수술을 집도하거나 참여하는 일명 ‘대리수술’을 소재로 얘기를 풀어가며 일반인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방영된 드라마 ‘보이스3’에서는 병원장이 의료장비 업체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지시해 환자가 의식을 잃는 장면이 연출됐다.
앞서 2018년 의학드라마 '라이프'에서도 병원 부원장이 로봇수술 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로 수술을 집도시킨 사실이 CCTV를 통해 드러나는 상황이 조명됐다.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에 의한 수술이 더 이상 수술대 위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당사자들끼리 비밀이 아닌 드라마에서까지 공공연하게 다뤄지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국민들이 대리수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법제화’를 둘러싼 의료계 내부 갈등이다. 간호사와 의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의료계에서 저수가를 방패 삼아 암암리에 운영했던 ‘PA제도’가 공론화되고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알려졌다.
물론 간호사는 의사와 함께 수술에 참여하고 교육을 받은 의료인이기 때문에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의 영업사원보다는 양호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불법의 영역인 건 매한가지다.
의료법에 분명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 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간호계는 PA인력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조속히 합법화해달라고 주장하며 지난 9월 1일부터 13일까지 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전문간호사협회는 “전공의 기피로 인력수급 문제를 겪는 진료과에서 환자 곁을 지킨 것은 전문간호사“라며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전문간호사들이 합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의사 역시 릴레이 맞시위로 대응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들은 PA인력은 불법임을 강조하며 의료인 사이에 업무범위 및 책임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협회는 ”불법 PA 의료행위는 국내 저수가 의료체계에 따른 왜곡현상”이라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며 의료체계를 무너트리고 의사 면허범위를 침범하는 전문간호사 개정안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PA제도는 의료인들의 직역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환자안전 및 인권과 직결되는 문제로, 의사를 믿고 마취에 동의 후 눈 감은 환자들의 신뢰를 배반했다.
그동안 의사를 믿고 수술대 위에서 편히 눈 감았던 환자들은 알고 보니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영업사원이 집도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6월 국민 1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술실 CCTV 설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의율은 97.9%에 달했다.
이제 국민들은 수술대에 오르기 전 수술의 성공 여부뿐 아니라 이 수술을 누가 집도할 것인지에 의심을 갖고 불안에 떨며 눈을 감아야 한다.
간호계 주장대로 PA라는 직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합법적 양성 단계를 마련하든, 아니면 의사들의 주장처럼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든, 의료계가 더 이상 국민들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