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바야흐로 ‘포스팅(posting) 시대’다. 블로그나 SNS 등 타인들과의 공감이 가능한 온라인 게시판에 사진, 영상 등 새로운 정보가 넘쳐난다. 덕분에 현대인의 정보 접근성은 가히 역대급이다. 반면 정제되지 않은 정보 위험성에도 그만큼 노출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 진입 시점에서 ‘건강정보’의 폭발적 수요 증가는 우려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실제로 검증되지 않는 건강정보들로 인한 피해 사례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학 분야 전문 언론인을 주축으로 설립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출범 소식은 달갑기 그지 없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일간지·방송·통신사 등 현장에서 일하는 의학·보건복지·바이오제약·의료기기 담당 기자들을 중심으로 지난 5월 닻을 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의학기자들의 전문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이 창립 배경이다. 초대 회장을 맡은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논설위원)는 건강정보 홍수 속에 일반인들에게 옥석을 가려 줄 ‘게이트 키퍼(gate keeper)’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약속했다.
“정제되지 않은 건강정보 폐해 심각한 실정”
사실 과거 방송이나 신문 지상에서 ‘건강’을 기사로 다루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적어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200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를 차지하는 고령화사회에 들어서면서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증했고, 이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각종 매체에서 보도되는 ‘건강’ 관련 뉴스 비중이 확연히 늘었고, 아예 일부 신문은 건강 지면을 별도 마련하기도 했다. 그에 편승해 의사 출신 기자들도 등장했다.
초반에는 매체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새로운 건강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이었던 만큼 언론에 한 번 노출된 다음 날이면 해당 병원은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김철중 회장 역시 이 시기에 기자의 삶을 시작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영상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그는 모교 병원에서 전임의 생활을 하던 중 1999년 조선일보에 기자로 입사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이후 20년 넘게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메디컬 저널리즘(medical journalism)’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가장 가까이서 목도했다.
“2000년 초반에는 언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탄생한 명의(名醫)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은 급속한 속도로 변화했다.”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건강정보’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났지만 오히려 언론 의존도는 확연하게 줄었다.
블로그, SNS, 유튜브 등 건강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통로가 늘면서 수요자들의 건강정보 이용 패턴도 변화했다.
과거 전문가들이 언론을 통해 전하는 정보에 의존하던 피동적 행태에서 최근에는 각종 채널을 통해 직접 정보를 습득하는 능동적 행태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김철중 회장은 바로 이 부분에 주목했다. 이러한 수요에 편승한 비정제된 정보들이 범람하고 이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우려다.
그는 “이제 메디컬 저널리즘은 단편적 건강정보 생산을 넘어 일반 국민들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보다 적극적인 검증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작금의 상황이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의 태생 배경”이라며 “향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미검증 건강정보로부터 국민들을 지켜내는데 일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의학기자들의 긴호흡 기사 부재 아쉬움”
물론 의학기자들의 결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과학기자협회’라는 단체 일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메디컬 저널리즘을 정립해 왔다.
특히 김철중 회장은 한국과학기자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과학기자연맹 회장에 선출됐고, 2015년에는 세계과학기자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협회 위상 강화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김철중 회장은 국내 메디컬 저널리즘의 글로벌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순발력과 다양성은 뛰어나지만 지구력과 전문성은 아쉬움이 크다”고 평했다.
의학기자들이 한국과학기자협회와 결별하고 별도 조직을 꾸리게 된 계기 역시 어쩌면 김 회장이 느껴온 지구력과 전문성에 대한 갈증에 기인하고 있을지 모른다.
“국내 의학기자들은 보다 긴호흡으로 중요한 이슈를 대중화 시키는 노력이 부족하다. 진정한 메디컬 저널리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향점이다. 협회 출범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며 부인하지 않았다.
일단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49명의 회원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물론 앞으로 점차 외연을 넓혀갈 예정이다.
시대적 흐름을 감안해 문호도 대폭 개방할 계획이다. 방송, 신문 등 현직 기자는 물론 블로거, 유튜버 등 전직 기자 출신 중에 ‘의료’와 관련한 뉴스나 정보를 정기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입회자격을 부여한다는 복안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회원으로 받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상 범위를 넓게 설정하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입회가 가능한 구조다.
구체적 기준은 아직 논의 중으로, 조만간 기준을 마련해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본격적인 입회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김철중 회장은 “가장 중요한 입회자격 기준은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메디컬 저널리즘 유지 여부가 될 것”이라며 “단 매체 종류는 시대적 변화를 십분 반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국민건강 수호 역할 최선”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지난 5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국민 소통과 집단면역’을 주제로 한 출범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0월에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디지털미디어 과사용 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디지털미디어와 건강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미디어 과사용 실태와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디지털미디어 과사용이 유발할 수 있는 건강상 문제와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등을 공개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의 궁극적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기자는 전문가가 아닌 만큼 전문가들과 함께 국민건강 수호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 실행한다는 복안이다.
때문에 앞으로 의학계 각 학회는 물론 유관단체들과 포럼, 공청회, 토론회 개최는 물론 설문조사, 캠페인 등 다각적인 행보를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김철중 회장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제약이 많았지만 위드 코로나를 계기로 의료계 유관단체들과 보다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협회의 독자 노선이 아닌 전문가들과의 동행을 택한 것은 언론과 의료 교차지점에서 적잖게 느껴왔던 소회 때문이다.
“왜 의사가 기자를 하느냐?” 1999년 기자로 변신해서 지금까지 의학전문기자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그이지만 요즘도 이렇게 역취재를 당한다.
그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기자는 정보를 알기 쉽게 대중화시키기 위한 ‘넓이’가 필요하지만 의사는 그 정보를 토대로 생명을 살리기 위한 ‘깊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 ‘넓이’와 ‘깊이’가 만나면 국민건강 수호에 충분한 시너지가 발현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김철중 회장은 “두 직역의 콜라보는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며 “앞으로 여러 유관학회 및 단체들과 의미있는 호흡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